사과 철이 오면 경북 의성, 전북 무주로 떠난다. 굴이 제철을 맞으면 경남 남해, 전남 고흥에 간다. 제철 식재료 찾아 매주 전국을 다니는 게 직업인 까닭이다. 그렇게 다닌 지 24년, 몸 세포에 다른 사람과 달리 계절 디엔에이가 만들어진 듯싶다. 다음 주는 어디, 그다음 주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동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산지를 다니며 품종에 관해 공부할수록 일본 품종이 참 많다는 것을 산이며 들판이며 바다에서 느꼈다. 바다에서 생산하는 것 가운데 일본 품종이 의외로 많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김, 미역, 다시마도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으로 양식하는 것이 꽤 있다.
과일은 품종에 따라 나는 시기가 다르다. 한여름에 나는 아오리, 시나노 레드, 산사 등 파란빛 도는 사과는 사과 농사의 시작을 알린다. 늦가을에 나오는 부사 또한 단일 품종은 아니고 열댓 가지 부사가 시차를 두고 나온다. 아오리 사과의 본명은 쓰가루다. 시나노 레드는 왠지 영미권에서 온 품종 같고, 산사는 우리 품종 같지만 셋 다 일본 품종이다. 부사(富士, 후지) 또한 일본에서 유래한 사과다. 사과뿐 아니라 감귤도 그렇다. 한라봉, 레드향, 황금향, 노지 감귤 등 거의 모든 품종이 일본에서 왔다.
사과나 감귤 묘목을 심으면 사오 년 지나야 수확한다. 당장에 무엇을 하기 어렵다. 과일은 어렵지만 쌀이나 고구마는 당장 할 수 있다.
쌀은 히토메보레나 고시히카리보다 삼광이나 일품, 신동진 같은 우리나라 육성 품종을 사면 된다. 고구마는 베니하루카, 꿀 고구마(일본 품종을 국내에서 부르는 별칭) 대신 풍원미로 검색하면 맛있는 호박 고구마를 살 수 있다.
오래전 딸기도 90퍼센트 이상이 일본 품종이었다. 일본의 무리한 사용료 요구로 재배 품종을 국내 육성종으로 바꾸었다. 몇 년이 지나자 일본 품종은 사라지고 완벽하게 품종 독립을 했다. 국내 연구진이 잘 만든 품종이 관행적으로 선택하는 일본 품종 때문에 선택받지 못하고 있다. 한번에 바꾸지는 못해도 딸기처럼 몇 년을 두고 지속적으로 바꾸면 좋을 듯싶다. 이참에 소비자들이 국내 품종을 찾는 '품종 독립 운동'을 시작해 보자.
김진영 - 식재료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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