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우표이야기

한국영화 100년. 기념우표

튼씩이 2019. 10. 26. 15:45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나요? 우표수집, 여행, 독서, 음악감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화관람이라는 응답도 꽤 많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산업정보 조사기관 아이에이치에스(IHS)가 국가별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연 4.2회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영화관람이 국민 취미가 되면서 한국영화에 관객들의 관심이 늘고, 세계인이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올해 한국영화 탄생 100년을 맞아 우정사업본부는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한국 최초의 영화관 광무대는 원래 1903년 미국인 콜브란이 10전씩 입장료를 받고 짧은 필름을 상영했던 동대문의 한성 전기회사 기계창고였습니다. 이를 1908년 연극인 박승필이 인수하여 명칭을 광무대로 바꿨습니다. 1910년을 전후하여 서울에 상설극장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박승필은 1917년에 일본인이 소유했던 극장을 인수하여 1년여의 공사 끝에 활동사진과 통속극 전용관으로 확장하여 개관했습니다. 이 극장이 바로 한국 최초의 상설영화관 단성사입니다. 광무대에 이어 단성사의 주인이 된 박승필은 일본인 극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연쇄 활동 사진극을 제작하기로 하고 , 신극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김도산에게 감독을 제안했습니다. 이로써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영화로 찍어 연극 무대 위 스크린에 삽입하였는데, 관객들은 조선의 풍광 속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에 신기해하며 환호했습니다. 조선인이 직접 만들어 상영한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의 개봉일인 1919년 10월 27일을 오늘날 한국영화의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후 일제의 탄압에도 계몽영화를 토대로 민족의식을 일깨웠던 한국영화는 해방과 전쟁을 거쳐 196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 했습니다. 1970~80년대 텔레비전 보급과 문화 검열로 한때 불황기를 맞기도 했으나 1990년대부터 대기업이 들어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다방면으로 수상하는 등 한국영화는 한류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친숙한 한국영화를 상징하듯 기념우표에는 태극 문양의 파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져 필름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념우표 발행에 이어 오는 10월 26일~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위대한 한국영화 100년 축제가 열립니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과 관객들의 신나는 행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