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문법 범주(2)

튼씩이 2020. 10. 17. 15:42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시제, 상, 양태를 살펴본다. 한국어의 주요 문법 범주 개수를 독자가 기억하기 좋도록 ‘셋째’부터 시작하도록 한다.

 

셋째, 시제(tense)는 어떤 사건이나 상태가 시간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문법 범주이다. 인류 모두의 머릿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관념이 다 있지만, 그것을 문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언어마다 다르다. 구별되는 시제가 없는 언어, 구별되는 시제가 2개인 언어, 구별되는 시제가 3개인 언어가 있는데, 우리말은 학교 문법에서 3개의 시제, 곧 과거 시제, 현재 시제, 미래 시제가 있는 언어로 설명한다.

 

 

 

 

(1)에서 말하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할 때 ‘읽었다’는 과거의 일이고 ‘읽는다’는 현재의 일이며 ‘읽겠다’는 미래의 일이다. 그러한 시간적 관념을 각각 문법 형태소 ‘-었-, -는-, -겠-’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말을 시제가 3개인 언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2)에서 보듯이 과거의 일에도 ‘추측’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겠-’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우리말에는 미래 시제에만 붙이는 문법 형태소는 없다고 하여 미래 시제를 인정하지 않는 문법학자들도 많다.

 

넷째, 상(aspect)은 어떤 사건이나 상태가 시간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문법 범주이다. 특히 움직임이 없어 정적인 상태보다는 움직임이 동반되어 동적인 사건에서 상 범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진행’과 ‘완료’이다.

 

 

 

 

(3)은 ‘읽다’라는 사람의 동작(외적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곧 시간적으로 진행의 모습을 띠고 있음을 나타낸다. 어간 ‘읽-’과 종결 어미 ‘-다’를 뺀 나머지 부분 ‘-고 있-’이 진행상을 나타내는 준문법 형태이다. (4)는 ‘익다’라는 사물의 작용(내적 움직임)이 다 끝난 완료 상태임을, 곧 시간적으로 완료된 모습을 띠고 있음을 나타낸다.

 

‘-어 있-’이 완료상을 나타낸다. 상은 시제와 비슷해 보이나 구별되는 개념이다. (3)에서 진행상을 나타내는 ‘-고 있-’이 현재의 일에 쓰였는데 (5)에서는 과거, 미래의 일에 쓰이고 있는 사실을 보면 상과 시제가 구별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양태(modality)는 화자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문법 범주이다. 바꿔 말하면 양태는 화자가 문장에 자신의 심리(정신)나 감정(마음)을 담는 수단이다. 우리말은 양태 표현이 상당히 발달한 언어로서 다양한 문법 형태나 준문법 형태를 통해 양태가 표현된다. 양태는 추상성이 높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려워서 학교 문법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다.

 

 

 

 

(6)의 기본적인 문장 의미는 ‘현우가 똑똑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사실만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똑똑하겠다’는 화자가 그 사실을 추측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똑똑하네’는 화자가 현우가 똑똑한 것을 현재에 직접 보고 알았음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볼 때 어미 ‘-겠-, -네’는 모두 문장의 객관적 내용이 아닌 화자의 심리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형태소라고 할 수 있다.

 

양태는 어미뿐 아니라 다양한 수단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 가령 (7)에서 ‘밥을’과 ‘밥이나’를 비교하면 보조사 ‘이나’는 밥을 하찮게 여기는 심리를 드러낸다. 또 (8)에서 ‘갔다’와 ‘가 버렸다’를 비교하면 준문법 형태 ‘-아 버리-’를 통해 화자의 실망감이나 아쉬움이 드러난다. 이상 소개한 양태 표현들은 빙산의 일각으로서 우리말에서 양태는 화자의 다채로운 심리와 감정을 전달해 주는 중요한 문법 범주이다.

 

 

 

 

특정 문법 형태나 준문법 형태는 시제, 상, 양태 중 둘 이상의 문법 범주와 관련될 때가 있다. (1)에서 ‘-겠-’은 미래 시제 형태소인데 (2)에서는 ‘추측’이라는 양태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9)에서 ‘-었-’은 과거 시제 형태소이지만 ‘-어 있-’과 같이 완료상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개념적으로 세 범주는 서로 구별되지만 실제로는 서로 얽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