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빛을 두려워하는 - 더글라스 케네디

튼씩이 2022. 2. 7. 08:00

 

 

이 소설의 화자는 우버 운전자 브렌던이다. 50대 후반 나이인 브렌던이 잠시도 쉴 틈 없는 근무 조건, 최저 임금, 반복되는 감정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우버 운전자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브렌던은 27년 동안 전기회사의 영업직에 종사한 인물이다. 회사는 매출 감소에 따른 불가피한 인원 감축을 내세워 브렌던을 해고한다. 브렌던은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회사에서 밀려났기에 어쩔 수 없이 우버 운전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생활비를 벌어야하기 때문에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할 형편인 그에게 우버 운전은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브렌던은 어느 날 은퇴한 교수 엘리스를 차에 태우게 된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인 병원에 도착한 브렌던은 엘리스를 내려준다. 엘리스가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얼마 후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나타나 화염병을 건물 안으로 던진다. 이내 큰 화재가 발생하고 브렌던은 병원 내부에 있는 엘리스와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구조 활동에 나선다. 다행히 엘리스는 무사히 탈출하지만 그날 이후 브렌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임신 중절 문제를 두고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의 중심부에 서게 된다. 엘리스가 임신 중절 수술을 받기로 한 여성들을 돕는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엘리스와 친밀해진 브렌던은 그녀가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태워주게 되면서 임신 중절 반대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입장이 된다.

 

브렌던의 배우자인 아그네스카는 매일 성당에 나갈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앤젤스 어시스트〉라는 입양 주선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고, 임신 중절 반대운동에도 열성적인 인물이다. 브렌던의 딸 클라라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돕는 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임신 중절 옹호론자이다. 브렌던의 가정에서도 임신 중절 문제는 심각한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아그네스카와 클라라는 의견 일치를 본 적이 없을 만큼 마찰을 빚고 있고, 브렌던은 딸의 생각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토더 신부는 임신 중절 반대론자이고, 아그네스카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브렌던의 어린 시절 친구이기도 한 토더 신부는 가톨릭 교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인 동시에 로스앤젤레스 최고의 자산가인 켈러허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토더 신부가 설립한 〈앤젤스 어시스트〉의 재원을 마련해준 인물이 바로 켈러허이다.

 

이 소설은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켈러허와 임신 중절 반대운동을 이끄는 토더 신부가 어떤 이해관계에 따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고 필요 없어지면 가차 없이 외면하는지 잘 보여준다. 법과 언론은 언제나 켈러허처럼 힘을 가진 자의 손을 들어준다. 힘없는 사람들은 체스 판의 말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이용당하다가 결국 내팽개쳐지는 운명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 소설은 언제나 생의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브렌던과 그의 가족, 은퇴 이후 묵묵히 선행을 실천하는 엘리스, 임신 중절 반대운동을 이끌며 명성과 부를 쌓으려는 토더 신부, 늘 세상을 제멋대로 움직여온 켈러허를 대비시키면서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불공정의 실상을 드러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신 중절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종교계와 일부 보수층에서는 여전히 임신 중절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교조적인 종교 단체, 과학과 이성을 도외시하고 맹목적인 신앙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자신들의 주장과 신념을 강요하는 한편 정신적인 압박과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일부 보수 세력이 임신 중절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는 실정 또한 이 소설에 나오는 미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 소설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자산가가 악당인 경우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어떤 피해를 입고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 선행을 실천할 때조차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부조리한 상황은 어떤 연유로 발생하게 되는지 자세히 그리고 있다. 평생 교수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한 엘리스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임신 중절 수술을 받으려는 여성들을 돕기 위한 자선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다. 임신 중절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적대시하지 않는 엘리스를 적으로 규정한다. 단지 임신 중절을 받으려는 여성들을 돕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극심한 대립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희생자를 낳게 된다. 태아의 생명을 중시한다면서 테러를 저질러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소설은 서로 적대적인 양 진영 사람들이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극한 대립을 벌이는 상황을 이용해 언제나 이익을 챙기며 지배적인 위치를 누려온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보인다. 아울러 이 소설은 브렌던 가족이 겪는 고통과 위기를 통해 사회적 갈등이 가정과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 출판사 리뷰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