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영어’를 널리 ‘보급’하고 있는 사람들
최근 연합뉴스의 이른바 ‘기사형 광고’ 문제가 자못 큰 화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위원장은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뉴스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합의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과연 ‘니즈’란 영어가 꼭 필요했을까? 더구나 이 ‘니즈’란 말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일본식 영어다. 저명한 어느 교수가 쓴 글이 “‘핀셋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려고 했으니 참으로 나이브하기 짝이 없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로 끝이 난다. ‘핀셋’도 ‘나이브’도 모두 일본식 영어다. 특히 글 결론부에 ‘나이브’란 말이 나오니 글 전체의 무게가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이다. 또 언론사 논설위원 출신의 칼럼에서는 ‘메리트’라는 말을 목격했다. ‘메리트’는 ‘어드벤티지’로 써야 할 곳에 잘못 사용되하고 있는 일본식 영어로, 우리 언론 기사에서 허다하게 쓰는 말이다.
그림 1. 언론 보도 자막으로 ‘핀셋 방역’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출처: 2020년 10월 14일 MBC 뉴스데스크)
사실 티브이(TV) 방송은 그간 우리 사회에 일본식 영어를 널리 퍼뜨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간 우리 방송계가 줄곧 일본 방송계를 모방해오면서 수많은 일본식 영어를 사용한 것이다. 지금도 티브이(TV)를 켜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멘탈’이니 ‘러브콜’, ‘원포인트 레슨’ 등등의 일본식 영어들을 시시각각 자막에 쓴다. 또 뉴스 프로그램에도 ‘레벨업’이나 ‘렌터카’라는 잘못된 일본식 영어가 버젓이 자막으로 나온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방송 케이비에스(KBS)의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유명 교수가 출연해 ‘마이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마이카’ 역시 유명한 일본식 영어다. 티브이(TV) 방송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이 매체들이 ‘공식적으로’ 일본식 영어를 널리 보급하고 있으니 더 문제다. 방송심의위원회 차원에서 이러한 일본식 영어 남용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본식 영어를 퍼뜨리는 또 다른 주요한 통로는 바로 공공기관이다. 최근에 널리 보급된 ‘위드 코로나’는 물론이고 ‘캐시백’이란 말도 일본식 영어다. 복지 분야에서 쓰이는 ‘배리어 프리’, 환경 분야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에코’로 시작되는 용어들도 일본식 영어다. 공공기관과 지자체들의 각종 홍보 용어들도 영어투성이지만, 사실 그런 영어 중 태반은 잘못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다.
그림 2. '캐시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공공기관 홍보물 (출처: 온통대전 누리집)
언어란 국가 주권의 주요 구성요소이며 사회연대의 중요한 조건이다
언어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시민 생활에 있어 사회 구성원들의 통합을 이끄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그리하여 언어는 한 국가의 주권을 확인하는 구성 요소이면서 사회연대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우리말을 소중히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임무다. 특히 우리말을 매개로 국민과 소통하고 나아가 올바른 언어 정책을 세워나가야 할 공공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를 통해 대중과 접촉하는 방송계와 언론 역시 그 임무가 더욱 막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공기관과 언론 방송계에서 거꾸로 우리말을 가벼이 여기고 언어생활을 어지럽히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공공기관과 언론 방송계는 하루바삐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지워내고 우리말을 가꾸고 키워내는 본연의 임무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소준섭(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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