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지방에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입석으로 서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뿐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르신들은 차표를 예매하는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거나 온라인으로 결제하는 방법을 잘 모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부르는 앱을 사용할 줄 몰라서 길 한복판에서 한없이 예약 표시등이 켜져 있는 택시들을 지나쳐 보내고 망연자실하거나, 급기야 외출이 두렵다고 주변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도 했다. 엊그제 과메기를 드시고 싶다는 아버지 말씀에 어머니께서 불편한 다리로 과메기를 사러 대형 슈퍼마켓에 다녀오셨다기에, 놀라서 다음날 바로 인터넷으로 새벽 배송되는 과메기를 친정집 문 앞으로 보내드렸다.
쉰 살이 넘으면서 드는 생각은 두려움이 커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더 들면 급변하는 정보나 기능으로부터의 소외, 무기력감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역으로 일하는 동안은 학생들과 교류하고 젊은 동료들과 소통하는 덕분에, 또 일로 인한 압박 때문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어느 정도 나를 현재에 맞게 살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10년 후 은퇴하고 나면? 지금은 아무리 날고 기더라도 어느 날 늙은 몸을 이끌고 길 한복판에 망연자실해서 서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정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자존감을 지켜 주고 사회에서 자신이 위치한 좌표를 깨닫게 해주며,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고 더불어 필요한 것을 찾아 공급받아 편리함을 누리게 해주는 삶의 주요 재료이다. 정보라는 재료로 주변 이들과 소통하고 내 처지를 이해시키고 남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기본적인 소통의 재료인 정보를 접할 길이 없다면, 혹은 특정 정보를 몰라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어려워서 위축된다면 어떠할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독일 공항에서 입국했던 경험담을 말씀하신다. 대부분 입국심사대에 있는 독일 경찰이 무섭다는 이야기였다. 덩치도 크고 인상도 무섭고 표정도 험악하다고 한다. 독일에 일과 여행으로 방문할 기회가 많은 나로서는 좀 의아하다. 독일 방문이 잦은 내 여권을 보면, 그 무뚝뚝해 보이는 독일 경찰의 질문이 갑자기 쏟아진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독일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학생들은 독일어를 왜 배워요? 독일어 배워서 무슨 일을 한국에서 할 수 있나요? 독일 도시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아요? 등등 미소까지 지으며 온갖 질문을 해댄다.
독일 경찰의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질문 세례는 독일어를 구사하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만한 경험이다. 같은 언어를 한다는 것,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빗장을 여는 것과 같다. 같은 언어 사용자로서 쉽게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전제만으로 두려움이 사라진다. 내 주변 사람들은 유럽에서 프랑스를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곤 하는데, 프랑스어로 소통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프랑스는 그저 두려운 곳이다. 글에 담긴 정보도 읽을 수 없고 의사소통에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 가면 독일에 있을 때 그저 마음이 편안하다. 독일어로 정보를 이해할 수 있고 독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독일어가 꽃피는 계기를 만든 그림 형제
그런데 독일 사람들에게도 과거 독일어가 박대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지식인 소수의 전유물인 라틴어 대신 천시받던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일어로 쓴 책이 읽히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어가 제대로 꽃피게 된 계기를 만든 이들은 바로 그림 형제(Gebrüder Grimm)이다. 형 야코프 그림(Jakob Grimm)은 독어독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언어학자로, 동생과 함께 게르만 민속 중에서 동화를 찾아내어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를 집대성하였다. 입으로 전해지던 설화를 기록문학의 형태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림 형제의 동화가 두루 읽히면서 본격적으로 독일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들 형제의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은 1852년에 시작하여 8년에 걸쳐 집필한 「독일어 대사전」이다. 이는 이후 언어학자들에 의해 1세기 이상이 걸려서야 겨우 완성되었다. 그림 형제의 노력이 없었다면 독일어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
한글은 그간 총 세 번 천시 당한 것 같다. 첫 번째로, 여성, 평민들이나 쓰는 언문이라며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에 의해서 천시당했고, 두 번째로, 일제 강점기에 침략 정부에 핍박당했고,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요즈음이다. 요새는 얼핏 보면 한글인데 우리말이 아닌 것이 지나치게 많다. 심지어 영어를 섞은 줄임말까지 넘쳐난다. 영어 선생인 나조차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확인차 다시 읽어보게 되는 표현이 셀 수 없이 많다. 영어권에 살아본 적이 없거나 영어를 오래 배우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영어에 자주 노출된 세대는 상대적으로 10대 포함 2030 젊은 세대이다.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어린 시절에 영어학원에 오래 다녔고, 영어 공부해서 대학에 갔고, 어학연수도 유학도 다녀와서 해외 경험도 많이 하다 보니 영어에, 읽는 소리를 달아놓은 각종 표현 등에 큰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요새는 진보를 자처하는 논객들도 ‘워딩(WORDING)’같은 표현을 수시로 사용한다.
광고는 장삿속으로 어쩌면 젊은 특정 계층만을 겨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교육청 포함 각종 관공서 안내문에 한글의 ‘껍질만 이용한’ 표현이 나오면 의아하다. 우리말 표현이 있지만 영어를 사용해서 색다르게 이목을 끌고 싶은 것인가. 하지만 그러한 표현들이 자주 사용되어 아예 우리말 표현을 없애는 원동력이 되어버린다면? 처음에는 어쩌면 자기들끼리만 아는 특별한 계층의 암호처럼 영어를 쓰고 ‘아는 사람만 사용해’라고 일부러 제한을 둔 지도 모르겠다. 의도대로 된 것일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늘어만 간다. ‘라떼’인 기성세대가 갑질을 한다고 하지만, 라떼들은 젊은 세대들이 하는 말과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서 소외된다.
공정성과 형평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어와 그 표현에서 풍기는 미묘한 차별을 영영 두고 볼까. 차별의 의도가 없더라도 사용되는 표현이 잠정적으로 누군가에게 위화감을 준다면 그 표현의 사용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사회에 누군가는 내가 무심코 사용한 말귀와 글귀를 이해하지 못해서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지 모른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세종대왕께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라며 한글 창제 이유를 분명히 밝혀놓으셨다. ‘서르 사맛디’가 정보의 이해도와 의사소통에 글자와 말이 함께 가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림 2. 한글의 껍질만 이용한 말이 너무 많다.
요새 나는 원하지 않아도 부쩍 반문하게 된다. 말귀를 못 알아먹어서이다. 지난주에도 학교의 젊은 동료 선생이 우연히 하소연하는 말을 듣고 부득이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지금은 당장 마통부터 만들어야 해요...” “네? 뭐라구요? 마통?” “아... 마이너스 통장이요.”
반문도 한두 번이지 못 알아듣는 횟수가 늘어나니 자꾸 주눅이 들게 된다. 앞으로 퇴직까지 10년을 젊은 세대와 같이 잘 소통하며 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생긴다. 아직 잘 버티고 있지만 20년 후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아예 길 위에 서서 어안이 벙벙하거나 아예 말귀도 못 알아듣고 글귀도 이해 못 해서 위축되어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강제 ‘히키코모리’가 될지도 모른다.
이선영(이화여자고등학교 독일어·영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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