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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퓰리즘을 ‘대중주의’라고 말하자

튼씩이 2022. 2. 17. 08:01

요즘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의미는 대체로 부정적인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퓰리즘이 엘리트나 소수 지배세력이 아닌 다수의 일반 사람들을 지향하는 용어임에도, 실제로 일반 사람들은 이 용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을 이해하기 쉬운 통일된 번역어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지만,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해지기에 차라리 그냥 영어식 표현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학자들은 번역어 선택 자체가 논쟁적이어서 논란을 피하려고 영어식 표현을 선호하기도 한다.

 

포퓰리즘의 ‘포퓰러’(popular)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거나 공감하거나 추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영어로 ‘people’이라고 하며, ‘인민’으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많은 사람(people)이 좋아하거나 공감하거나 추구하는 것을 제공하려는 정치적 이념이나 전략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포퓰리즘이 인민을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인민주의’로 번역할 수도 있겠고, ‘대중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대중주의’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번역어 선택을 위해서는 포퓰리즘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국내 포퓰리즘 논쟁은 1980년대 남미의 민주화 이론과 종속이론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1946년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육군 대령 후안 도밍고 페론은, 집권 후 친노동자 정책을 실행하여 정치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 포퓰리즘은 대통령이 지방 토호 중심의 과두제적 엘리트 지배에 맞서 노동자 대중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정치이념이자 전략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포퓰리즘은 ‘민중주의’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이때 민중은 좀 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민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집권세력의 정치전략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기에,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때 민중이 동원되는 대상으로 규정되면, 민중은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남미의 포퓰리즘이 국내에 소개된 시기를 생각해 보면, 포퓰리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80년대 초는 민주화의 기회를 쿠데타로 억누르고 등장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전두환은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해 부정부패 척결, 정의사회 구현, 과외 금지, 프로야구 출범, 문화적 개방, 경제성장 등 대중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가치나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또 추구하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노동자들의 권익 요구에 대해서는 지속하여 억압하였다. 여기서 인기영합적 정책을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끌어내고자 한 전두환의 정치전략은 포퓰리즘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대중영합주의’나 ‘대중추수주의’로 번역되었고,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전통을 이어간 보수 정치세력의 인기영합적 정책들을 비판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물론 지금은 또 다른 맥락에서 정치적 상대 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일반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포퓰리즘은 기본적으로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정치이념이자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세력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정치세력들은 서로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전략적으로 동원하게 된다. 그래서 서로의 정책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 인기영합적이라거나, 단기적이고 임시방편적이라거나 하면서 비난하게 되고, 이런 부정적인 맥락에서 상대방의 이념이나 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려고 한다.

 

이처럼 포퓰리즘에 대한 양면적 해석이나 규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현실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포퓰리즘은 그 본래의 의미, 즉 엘리트 지향에 맞서 ‘대중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대중주의’로 번역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민주의’나 ‘민중주의’는 아무래도 긍정적인 의미에 치우쳐 있고, ‘대중영합주의’나 ‘대중추수주의’는 부정적인 의미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포퓰리즘’이 그러하듯이 정치적 맥락에 따라 또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번역어로 ‘대중주의’가 가장 적절해 보인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다 보면, 아마 그 의미도 더 친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정태석 / 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