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유학생 유치와 교류 확대의 목적으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중앙아시아는 소련이 해체된 후 독립한 5개의 국가로 구성된 지역으로, 과거에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투르크(돌궐) 사람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들 국가의 언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서로 간의 일상적 소통은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이 출장길에 우즈벡인 직원 한 명과 같이 다녔다. 우즈벡은 과거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로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오랜 기간 동안 동서 교역의 중심이었던 만큼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산다. 중국에 50여 개의 소수민족이 있다고 하는데, 우즈벡은 인구 3천만 명에 150개가 넘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언어도 다양해서 우즈벡인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안다. 공용어인 우즈벡어를 기본으로 서남쪽은 이란과 가까워 페르시아어까지 함께 쓴다. 오랜 기간 소련에 속해 있었기에 도시에 사는 노인들은 러시아어가 더 편하기도 하다.
동행했던 이 친구는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현지 한국 회사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한 덕에 가끔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말을 잘했다. 게다가 러시아어와 영어도 잘했기에 어느 나라를 가든 통역으로 든든했다. 한 번은 함께 터키에 갔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그쪽 운전기사와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터키어도 배웠느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터키어도 같은 어족에 속해서 기본적인 말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언어에 특별히 소질이 있는 친구여서 그러려니 했지만, 궁금해서 어떤 말들이 주로 다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비행기’를 예로 들었다. 비행기를 터키어로는 ‘우착 uçak’이라하는데, 우즈벡어로는 ‘사말리오트 samolyot’라고 한다. 우즈벡어 samolyot는 러시아어 ‘써말리오트 самолет’에서 왔다. 우즈벡이 소련에 편입된 것이 1924년이고, 비행기가 우즈벡에서 일상적으로 날아다닌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니 소련이 비행기와 함께 들여온 러시아어가 우즈벡에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문물의 발달과 함께 단어들은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고, 그 문물이 수입될 때 단어들도 함께 들어오기 일쑤다.
사신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궁전의 사신도
우리가 요즘은 드론이라는 걸 자주 보게 되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그 말을 쓴다. 드론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인기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영어권에서는 Unmanned Aerial Vehicle 혹은 줄여서 UAV라고 쓰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하면 무인항공기 또는 무인기가 되는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처음 성공한 것이 1903년이었는데 불과 10-20년 후에 혼자서 날아가는 무인기가 등장했다. 물론 그 당시의 무인기는 주로 군사용이고 성능도 지금보다 형편없었지만, 이처럼 무인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1930년대 영국군은 무선 조종기로 날리는 비행기를 개발해서 훈련에 쓰고 있었고, 그걸 본 미국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무인기를 개발했다. 당시 영국의 무인기 이름은 Queen Bee(여왕벌)였는데 이걸 개량한 미국인들은 자기들 무인기에 Drone(수벌)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여기서 우리가 쓰는 드론이라는 용어가 유래하였다. 취미용으로 가지고 다니며 사진이나 찍고 하는 드론이 이제는 승객을 싣고 복잡한 도심을 가로질러 다닐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아직은 개발 단계이지만, 전문가들은 이 시스템이 도심의 교통체계를 바꿀 혁명적 수단이자 미래의 주요 산업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이런 항공기를 언론에서는 ‘드론 택시’라고 부르고 전문가 집단에서는 Urban Air Mobility(도심 항공), 줄여서 UAM이라고 한다.
UAM-Cover: 미래 도심 항공운송 체계 (미국 나사NASA)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점점 더 빨라지면서 새로운 물건과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그에 맞게 새로운 말들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도심 항공을 포함한 미래교통체계를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는 것이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용어다. 물론 이 말도 우리보다 좀 더 일찍 이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시작한 미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지능형 교통체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능형 smart’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해보면 자율주행 기능이 들어가서 교통상황을 인지하며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데려다 줄 수 있는 수단인데, 실제 스마트 모빌리티는 이 범위를 넘어서 차량 공유, 친환경 등의 개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전동킥보드 같은 이동 수단을 언론에서는 퍼스널 모빌리티라 부르는데, (교통 안전을 담당하는) 경찰에서는 이를 ‘개인형 이동장치’라 부른다. 하나의 용어가 사람마다 분야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나라마다 쓰임새가 다를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교통수단을 나타내는 transportation과 구별하여,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체계를 모빌리티라 정의하기도 한다. 내가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빌리티를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가 있어도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 있으면 모빌리티는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파생 기술과 제품이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용어와 물건 또는 기술을 1 대 1로 맺어주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OPPAV: 풍동시험 중인 미래형 개인비행기 (항공우주연구원)
블록체인, 오버더탑(OTT), 메타버스, ... 어떻게 보면 우리 일상 속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들인데 그 단어만 봐서는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새로운 용어와 기술에 대한 적응도는 세대와 계층을 가르는 경계석이 될 것이다. 국어의 위기다. 우리말의 구조야 바뀌지 않겠지만, 새로운 문물에 관련된 단어들은 외국어 또는 신조어로 가득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개념조차 사람마다 다르게 쓰일 수 있다. 나라에서 모든 단어를 정의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핵심이 되는 사물, 기술, 개념에 대해서는 사회가 공용으로 쓸 수 있는 표준 단어의 제정이 필요하다. 마치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등 다양한 이름이 혼용될 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용어로 통일했던 것처럼. 그리고 ‘모빌리티’의 쓰임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를 사용 분야에 알맞은 구체성과 추상성을 담은 용어로 번역하려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견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하나의 말로 1:1 대응이 불가능하니 그냥 외국어를 쓰자는 쪽으로 기울어져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에 한계를 자초할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 때 북한과 협력해서 하면 어떨까 제안한다.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엄격하게 한글전용주의를 실시하고 있고, 외국어를 가급적 우리말로 뜻풀이해서 쓰고 있다. 어떤 단어들은 그 기발함에 놀라기도 한다. 앞의 우즈벡-터키어의 분화에서 본 것처럼 언어는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문물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겪고 난 후에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언어의 이질감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질 것이다. 우리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언어의 사용이 필수이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나날이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 세계가 인터넷과 편리한 항공운송 체계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만큼 새로운 개념이 늘어나고, 신조어도 많이 만들어진다. 정부는 동일한 개념에 동일한 용어를 써야 하는 기본 방침을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정책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우리 민족 전체가 함께 쓸 수 있는 말들이 정립되면 더욱 바람직하겠다.
최기영 / 인하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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