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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AI

튼씩이 2022. 2. 28. 10:14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에이아이(AI)’가 기술적, 상업적 유행어로 떠올라 널리 쓰인다. 온갖 광고에 에이아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에이아이(AI)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인데, 이게 '인공지능'이라는 말보다 있어 보이나 보다.

 

최근 들어 기술적인 각광을 받아서 그렇지 사실 인공지능의 역사는 짧지 않다. 컴퓨터의 역사가 곧 인공지능의 역사이다. 컴퓨터 자체가 생각하는(좁은 의미로 ‘계산하는’) 기계를 만들려는 목표 아래 발전했다. 수많은 공학자, 기술자들이 컴퓨터를 발명하고도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하여 큰 노력을 쏟아부었다. 컴퓨터가 훌륭한 발명품이긴 하지만 고급 계산기에 불과하므로 ‘생각한다’는 개념의 수준에 어울릴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에 프로그래밍 언어도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하여 개발되었다. ‘언어’야말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가 수행하는 활동이라고 보았으므로, 그런 인공 언어를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 개발의 일환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미 1980년대부터 인공지능 연구가 시작되었으니 역사가 짧지는 않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컴퓨터의 속도가 충분하지 못해서 실용적인 결과를 얻기 어려웠다. 1980년대 말, 인공지능을 공부할 때는 이 지능이 동작하는 게 너무 느려서 연구자끼리 농담으로 ‘인공저능’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영어로도 머리글자가 같게 ‘Artificial Ignorance’라고 불렀다. 그 뒤로 하드웨어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져 현실적인 활용이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의 결과가 나오고 이제 곧 모든 일을 인공지능에 맡길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동안 ‘생각하는 기계’로서 인공지능을 만들려는 노력은 크게 두 갈래로 뻗어왔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논리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입력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처리하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 독일의 수학자 힐베르트의 꿈처럼 엄격한 논리체계 위에서 논리적 창의가 발전하는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길이었다. 이 방법은 방대한 지식을 논리적으로 가공하는 데 매우 큰 노력이 들고 우리가 아는 지식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가공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다른 방법은 뇌가 생각하는 방식을 흉내 내는 것이다.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이라고도 하는데, 뇌의 기제를 소프트웨어로 흉내 내는 방법이다. 뇌신경망은 각 신경세포가 자신이 받은 자극을 간단한 연산에 해당하는 처리를 한 후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하고, 전체 신경망에서 발생하는 이런 과정의 총합이 ‘생각’을 만든다. 이 방법의 장점은 인공신경망이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예만 보여주면 그 예들을 통하여 인공신경망이 배우는 것이다. 이 방법은 논리적 체계를 엄밀히 가공할 필요는 없지만 굉장히 많은 계산을 하여야 한다. 즉, 컴퓨터의 성능이 매우 좋아야 한다.

 

최근에 각광받는 인공지능은 주로 이 인공신경망 기술을 말한다. 바둑에서 사람을 이긴 알파고도 이 인공신경망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해당 분야의 기술 발전도 있겠지만 크게는 컴퓨터 하드웨어 발전의 결과라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엄청난 컴퓨터 자원을 동원하여 인공신경망이 실용적인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 내면서 인공지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 곁으로 바싹 다가온 인공지능과 함께 전문가들의 용어인 에이아이도 대중의 언어 세계에서 자리를 잡아간다.

 

 

 

 

현대 기술이 외국에서 발전하여 들어온 경우가 많으므로 영어로 된 기술 용어를 쓰는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하지만 기술이 보편화되고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외국어 용어가 따라 들어오면 그 분야의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상당히 생소하여 뜻을 즉시 알 수 없는 용어가 된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라면 들어서 즉시 알 수 있는 수준의 말이 되어야 한다. 물론 ‘즉시’의 범위가 모호하거나 넓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런 것이 목표나 방향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쉽고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가 있다. 물론 광고처럼 어떤 것을 새롭게, 특이하게 보이도록 하여 사람의 주목을 받고 싶은 경우는 일부러 뜻을 알기 어려운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준의 용어라면 이해하기 쉬운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을 다루는 영역에서도 종종 이 용어 문제로 고민하고 의견 대립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이렇게 일상으로 들어오는 기술 용어를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자고 하면 이미 그 분야에서 그런 외국어 기술 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있다. 반발의 요지는 대개, 그 말이 전문 분야에서 이미 오래 사용되었고 그 개념 자체가 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번역하고자 하여도 우리말에 꼭 같은 혹은 대용할만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서, 새삼스럽게 바꿔 혼동을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개념을 명확히 아는 전문가들은 자기에게는 ‘어설픈’ 번역 용어가 마땅치 않을 수 있다. 의미를 잘못 전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커지는 것이다. 이런 걱정이 때로는 실제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백업(backup)이라는 말은 이제는 많은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와 있다. 의미는,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원치 않는 일에 대비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냥 ‘대비하다’ 정도로 대신 사용한다면 나타내려는 뜻과 느낌에서 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그 파일 잘 백업 해둬.”라고 할 말을 “그 파일 잘 대비해둬.”라고 하면 좀 애매하다. 앞의 말을 듣고는 아마 그 파일을 안전한 다른 곳에 복사해 두겠지만 뒤의 말은 언제 사용될지 모르니 잘 준비해 두라는 것인지 어쩌라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니 적당하게 대신 쓸 말이 없어서 대부분 백업이라고 쓴다.

 

다른 예로, 디폴트(default)라는 말은 경제 용어로는 채무불이행이라는 뜻인데 컴퓨터 용어로는 기본값이라는 뜻이다. 컴퓨터 관련 용어로서 디폴트는 대부분 기본값이라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그러나 습관 때문인지 혹은 뭔가 전문가다운 느낌 같은 것 때문인지 디폴트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처음 이 말을 접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학이나 기술의 영역에서 우리나라, 혹은 우리말을 쓰는 지역이 원천 기술의 발생지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외국어로 수많은 개념을 배운다. 그러다 보니 전문 영역에서 그런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 편하기도 하고, 계속되는 국제적 기술 교류에도 유리하다. 우리가 고유의 기술이나 개념들을 발견, 창안한다면 우리말로 된 용어들을 만들고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말로 용어를 고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새로 배우는 사람들이 우리말 용어를 접하면 이해가 빠르고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대응 말이 없어서 개념을 혼동하게 할 위험도 있지만, 용어를 듣고 바로 개념까지 이해된다면 배우기가 쉽고 그 결과 해당 분야의 발전도 빠를 수 있다.

 

알려진 것처럼 북한은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을 많이 한다. 모든 걸 다 우리말로 바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던데 북한 역시 첨단 과학과 기술 분야에선 외국어를 그냥 사용하는 일도 많다. 개인적으로 참 잘 바꾼 것 같은 컴퓨터 관련 용어는 ‘봉사기’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서버(server)를 북한에서는 ‘봉사기’라고 한다. 영어를 그대로 직역한 느낌도 나지만 꽤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분야에서는 클라이언트-서버(client-server)라는 두 개의 대응되는 단어를 시스템 간의 관계에 사용하는데 이를 북한에서는 의뢰기-봉사기라고 한다. 의뢰기는 좀 더 낯설기는 하지만 읽고 바로 두 시스템이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만든 기술이 아니라서 생기는 과학 기술 용어 문제에는 첨단 기술의 발전을 고려한 시각으로 봐도 빨리 배울 수 있게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기술 추적이 쉽게 할 것인가 고민이 생긴다. 두 마리 토끼는 잡기 어렵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문제는 많다. 그렇게 쉬웠으면 애당초 문제가 아니었을 터이다.

 

 

 

 이동현 / 전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