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유행한 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처음에는 한두 달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감염병의 고통은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접하는 이야기였는데, 어느덧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이 됐다. 백신이 나왔다지만 아직 접종률도 충분하지 않고, 변이에 대한 효과도 미심쩍다. 어서 코로나19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데 바람만큼 쉽지 않을 것 같아 울적해지기도 한다.
코로나19(이후 코로나로 줄임) 유행이 길어지면서 ‘포스트 코로나’라는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접두사 ‘포스트(post)’는 무엇인가의 ‘후에’, ‘뒤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애프터(after)와 뜻이 같다. 그러니까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 이후’라는 뜻이다. 인터넷 포털 다음백과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이후의 세계. 팬데믹 현상과 함께 전 세계를 감염병 공황 상태와 함께 방역을 위한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등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을 초래했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가져올 사회적 변화 양상과 추이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2020년 3월 <월스트리트저널>과 세계경제포럼 등의 칼럼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인용되기 시작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난 이후의 특징적인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림 1. 교육방송(EBS) 다큐프로그램(포스트 코로나) 예고 화면
이 말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국언론재단에서 운영하는 언론기사 검색사이트 빅카인즈에서 검색해봤다. 2020년 1월 1일부터 2021년 7월 30일까지 54개 신문과 방송사의 기사를 검색해 보니 8,399건의 뉴스, 10,819건의 인용문이 검색됐다. 엄청난 양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이미 친숙한 단어가 됐다. 정부와 언론, 기업, 시민사회를 가리지 않고 이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널리 쓰이는 만큼 이 말의 의미도 분명할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실제 용례를 살펴보자.
지난 7월 26일 자의 어느 보도 내용이다. 정부는 당일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막대한 세수 감면 효과가 기대된다는 ‘2021년 세법개정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 세법개정안에 대해,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심화된 우리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코로나 추경 116조 쏟고도 세금 깎아주나…1.5조 중 0.9조 ‘재벌 감세’」. 뉴시스 2021.07.27.)
여기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말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요즘을 가리키고 있다. 앞서 본 백과사전의 정의와 같다. 하지만 다른 뜻으로 쓰기도 한다. 아래 보도를 보자.
2분기까지만 보면 좋았습니다. 그런데 3분기는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어서 안 좋았을 것 같은데요. 2분기까지 나온 통계를 보면 완연하게 포스트코로나로 넘어가려는 그런 국면들이 보이고 있고요. 지금 카드 승인 액수들이 나오고 있고 건수도 나오고 있는데. 아마도 보복 소비 스타일, 아직까지 나온 건 아닙니다, 저 정도로는. 그게 원래대로 했었으면 7월, 8월 휴가철에 나왔어야 됐는데. 일단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또 델타 변이 때문에 멈춰 있는데요(「라면값도 달걀값도 줄줄이 올라...밥상 물가 인상 현실화」, YTN 2021.07.30.).
여기서 “완연하게 포스트코로나로 넘어가려는 그런 국면”이란 말은 맥락상 코로나가 종식되고 소비가 완연하게 회복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2분기까지는 소비가 늘어나면서 소비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가 끝나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포스트 코로나를 코로나 종식 이후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용례도 적지 않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자가 50만 명을 돌파했다는 최근의 보도를 보자.
“일할 때 일하되 무리하게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자) 등장에 일과 가정 양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등이 강해지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재택근무가 점차 확산될 것”이라는 내용이다(「아직도 회사 출근하니?…재택근무 50만 명 넘었다」, 『매일경제』 2021.07.26.).
이때의 포스트 코로나는 맥락상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를 가리킨다. 종식 후에도 재택근무가 확산되리라는 예상을 담았다.
그림 2.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 유행 이후인가? 코로나 종식 이후인가?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린 것일까? 사실은 모두 맞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이후라는 시기 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질적으로 다른 시기가 있다. 하나는 코로나 유행이 계속되는 시기, 또 하나는 유행이 끝난 후의 시기다. 두 시기 모두 ‘포스트 코로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그래서 문제다. 코로나 유행기와 종식 이후의 시기에 정부의 정책과 시민의 태도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와 같은 위중한 감염병을 다루면서 정부와 언론이 이렇게 모호한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혼란은 포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중의적인 탓도 있다. 1880년대 후반에 형성된 미술 사조 포스트 임프레셔니즘(Post-Impressionism)은 후기인상파로도, 탈인상파로도 번역된다. 이 사조로 분류되는 폴 세잔,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같은 화가들이 한편 인상파의 특징을 계승하면서도, 다른 한편 거기서 벗어나는 혁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문예 사조이자 인문학 방법론인 포스트 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은 후기식민주의로도, 탈식민주의로도 옮길 수 있다. 식민주의와의 연속적 측면을 강조할 것인가, 단절적 측면을 강조할 것인가에 따라서 어느 쪽으로도 옮길 수 있다. 실제의 현실은 연속과 단절의 복합체이겠지만, 번역어의 선택은 어떤 측면에 더 주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때로 이런 중의성을 그대로 살리고 싶은 이들은 포스트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모두 학문적 논쟁의 영역이다.
학문이나 예술 분야에서 포스트라는 단어의 중의성은 혼란을 일으키는 만큼이나 생산적 논쟁이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후일에 오늘날을 회고하면서 ‘코로나19 종식 이후가 진정 종식이었을까?’ 같은 논쟁의 맥락에서 포스트 코로나라는 표현을 중의적으로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 정부와 언론이 포스트 코로나를 이런 학술적 맥락에서 일부러 중의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리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저 서구에서 사용하니 멋있어 보여서 유행에 편승하고 있을 뿐이라는 데 한 표 던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발언에 해석본이 필요해서는 안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코로나19 종식 이후 정도로 구별해서 표현하면 아무 혼란도 없을 일이다. 서구 유래의 단어 사용에 무조건 반대할 필요는 없다. 때로 외국어는 우리말과 사유를 풍요롭게 자극하고, 이윽고 우리말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의 포스트는 그렇지 않다. 태어난 곳으로 돌려보내자.
조형근 /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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