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재미있는 우리 속담 - 놀란 토끼 벼랑바위 쳐다보듯

튼씩이 2022. 4. 1. 07:50

 

속담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켜켜이 쌓아 온 지층의 단면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대로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노래나 판소리에 속담이 슬쩍 끼어들기도 하고 노래나 판소리의 한 구절이 속담으로 다시 전승되기도 합니다.

 

이름난 소설이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처럼 공유하는 사람살이의 한 장면을 대변합니다. 예를 들어 춘향이네 집의 속사정이나 심 봉사의 기구한 사연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직접 겪은 일인 양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곤 하지요. 밥 얻으러 온 동생에게 밥풀 묻은 주걱이나 날리는 놀부의 심보에 같이 분개하기도 하고 춘향이가 보고 싶어 애타는 이 도령의 심정을 자신의 일처럼 애닳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 속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말들이 속담으로 전승되는 일도 많습니다.

 

“춘향이 집 가는 길 같다”라는 말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아무리 헤매도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다는 의미의 속담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가며 구불구불 춘향이의 집을 찾아가는 이 도령의 속이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타 들어가겠지요. 자라에게 속아 자신이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던 사실을 깨달은 토끼의 심정을 빗댄 “놀란 토끼 벼랑바위 쳐다보듯”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심사가 놀부”라거나 “놀부의 환생”이라는 말은 모두 욕심이 많고 심사가 사나운 사람들을 가리키는 속담입니다. “놀부 마누라는 명함도 못 내민다”라는 말 또한 같은 의미의 옛말이지요.

 

“재주가 홍길동”, “소대성이 모양으로 잠만 자나”, “소대성이 이마빡 쳤나” 등은 모두 소설 속 주인공의 특징에 상대방의 모습을 빗댄 표현들입니다. 홍길동처럼 재주가 많거나 소대성처럼 잠만 자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심봉사 잔치”라는 말은 주인이 없는 잔치라는 의미로 어떤 일을 행하는데 막상 그 일의 당사자가 없는 경우를 가리키는 속담입니다.

 

옛이야기만큼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는 것도 없지요. 특히 물난리가 나거나 극심한 가뭄이 들어 흉년이 진 해의 일들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됩니다. “신축년 남편 찾듯”이나 “무진년 팥 방아 찧듯”은 모두 가뭄이 심하게 들어 흉년이 지는 바람에 극심한 궁핍을 경험한 해의 경험들을 대변하는 속담입니다.

 

신축년 가뭄과 흉년으로 가족이 모두 흩어지는 바람에 헤어진 남편을 찾는 일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의미의 옛말인 것이지요. 무진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년 든 해에 팥 방아 찧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말도 쓸데없는 일에 기운을 쓰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속담입니다.

 

“소 탄 양반의 송사 결정”이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소 탄 양반’은 청렴결백하기로 이름이 높았던 조선 시대 이름난 정승 맹사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가 내리는 송사 결정이라면 무엇이든 믿어도 좋다는 의미의 옛말로,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게 옳은 일을 가리키는 속담입니다. 반면 “신창리 영감의 송사”는 전혀 다른 의미의 속담입니다. 사람들이 다투는 송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신창리 사는 한 영감이, 항상 양쪽의 말을 들은 뒤에 ‘이 사람도 옳고 저 사람도 옳다’고 말하곤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말하며 판단을 회피하거나 명확하게 판가름을 내지 않는 사람의 태도를 가리키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색함이 지나친 사람을 가리켜 “최 생원의 신주 마르듯 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옛이야기에 최생원이라는 사람이 인색하기가 이를 데 없어 제사 지내는 비용도 아까워하는 바람에 제사를 전혀 지내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명색이 양반인데 제사를 지내지 않을 정도로 구두쇠였던 것이지요. 최 생원네 귀신은 젯밥 받아먹을 일이 없으니 그 집 신주가 마른다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잘 모르는 일에도 아는 척 하는 사람을 가리켜 “최동학 기별 보듯”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옛날에 최동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자무식이면서도 글깨나 아는 듯이 행세를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식인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관가에서 보낸 기별을 마치 잘 아는 내용인 듯 아는 척하다가 큰일을 겪을 뻔하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속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 문화의 요체를 보여 주는 말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상식으로 통용되는 지식이나 생활 정보는 물론, 소설과 판소리, 민요와 옛이야기 등 다양한 구전 문화와 소통하고 교섭한 결과를 지도처럼 축적해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때문에 관습처럼 굳어진 관념이나 행동 방식, 혹은 어떤 편견이나 관성화된 사고의 틀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다음 시간에 속담의 또 다른 면모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글_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