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려내는 아버지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의 독자가 공감하며 읽었던 추억의 소설이기도 하다. 그 ‘가시고기’가 출간 20년을 맞았다. 작가는 소설 속 아홉 살 주인공 다움이가 스물아홉이 된 시기에 맞춰 가시고기 뒷이야기를 펴냈다. 다움이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했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언제 알게 될까?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결국 아버지의 희생적인 사랑을 깨닫게 될까? 독자들이 궁금했을 이야기들이 담겼다.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모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낯선 땅 프랑스로 갔다. 아버지가 그리웠지만 마음껏 그리워할 수 없었다. 그리움은 미움이 되고 분노가 되고 마침내 아버지를 기억 밖으로 밀어냈다. 영화 조명감독으로 촬영 차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스물아홉 살의 청년 다움은 필연적으로 아버지의 흔적들과 만나게 된다. 아픔과 상처를 씻고 화해와 사랑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 yes24, 책소개에서 -
프롤로그
바람으로 낯을 씻고, 별의 노래로 잠을 청하는 초원.
그 초원의 끝자락에 어린 아들과 늙은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두 다리가, 아버지는 아들의 밝은 두 눈이 되어 살아갔다.
초원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풀들은 시들고, 우물은 마르고, 가축들은 야위고, 이웃들은 하나둘 초원을 등지고…….
마침내 초원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게르에 먹을 것이 떨어졌다.
아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초원을 떠나기로 했다.
멀고 험한 길이기에 아버지를 데려갈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양을 잡아 아버지 곁에 남겨두었다.
돌아올 때까지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 아들은 말했다.
“아홉 밤이 지나기 전에 돌아오겠어요.”
“아들아, 너는 언제 하루가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모르잖느냐?”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그게 하루죠.”
“그렇지만 아들아, 초원의 길을 알기 위해선 밝은 눈이 필요하단다.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 거다.”
“아빠, 제가 양과 염소를 데리고 초원 멀리 나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덧붙였다.
“저는 어디에서든 아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요. 아빠의 향기가 나에겐 밝은 눈이에요.”
게르에 늙은 아버지 혼자 남았다.
떠나기 전 아들은 아버지에게 당부했다.
“사나운 늑대가 나타날지 모르니 꼭 게르 안에 계세요.”
한 번, 두 번, 세 번…….
아홉 번을 잠들었다 깨어났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게르 문밖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낮에는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밤에는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늑대가 무서워도 차마 게르 안으로 몸을 숨기지 못했다.
게르 밖에서 자신의 향기가 초원 멀리멀리 날아가길 바랐다.
그래야 아들이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테니까.
아홉 번의 밤과 낮이 다시 여러 차례 더해졌다.
시든 풀처럼, 말라버린 우물처럼, 야윈 양처럼 아버지는 빠르게 기운을 잃어갔다.
마침내 아들이 돌아왔다.
아버지의 허기를 달래줄 식량을 가득 담은 자루를 등에 진 채로.
아들은 아주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날들이 흘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 아빠…….
아들은 아버지를 불렀다.
크게, 목이 쉬도록 오래.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게르 문가에서 아버지의 겉옷을 찾아냈다.
아버지의 살은 녹아 땅으로 스며들었다.
아버지의 뼈는 삭아 공중에 흩어졌다.
아버지의 겉옷만이 남아 아들을 향한 손사래인 양 바람에 나부꼈다.
아들은 울고 또 울었다.
뚝뚝, 눈물이 메마른 땅 위로 떨어졌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눈물을 받아먹으며 자라나 꽃을 피웠다.
아버지의 향기를 닮은 꽃이었다.
한 송이 꽃이 구름을 불러 모았다.
구름은 비가 되어 메마른 대지를 적셨다.
잠든 풀씨들이 일제히 깨어나 푸른 초원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람들이 서둘러 초원으로 돌아왔다.
게르 앞에 앉아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아들의 발치에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는 모습도 보았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죽어 꽃이 되었다고 했다.
꽃의 향기가 초원을 살렸다고 믿었다.
희망의 꽃이라며 네뜨와르로 불렀다.
네뜨와르는 시들지 않는 꽃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 순간 네뜨와르도 홀연 꽃잎 떨어뜨리며 대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 아무도 네뜨와르를 보지 못했다.
초원에 가뭄이 닥치면 사람들은 네뜨와르를 떠올렸다.
어린 아들처럼 메마른 땅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흘렸다.
한 송이 네뜨와르가 피어나기를 기원했다.
네뜨와르의 향기를 좇아 구름이 몰려오고, 구름이 모여 비가 되고, 마침내 초원을 살려낼 것이라고 믿으며. - 7∼11쪽 -
정, 호, 연
가시고기 우리 아빠.
아빠는 나 때문에 행복했단다. 믿기지 않았다. 행복까지는 무리일지라도, 적어도 나 때문에 활짝 웃었던 날이 한번쯤은 있었길 바랐다. - 343쪽 -
아버지를 떠나 쫓기듯 찾아간 프랑스에서 오직 아빠와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가던 다움이는 엄마와의 갈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한다. 10년 만 기다리면 된다는 희망은 열여섯이 되던 해에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에 모두 사라져버린다. 아빠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도 못하는 외톨이가 되어버린 다움이. 이름도 다움이에서 에두아르로, 그리고 케인으로 바뀌면서 정체성을 잃어간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외로움에 갇혀 지낸 지 20년. 이제는 조명기사가 되어 영화 촬영 차 한국으로 돌아온 다움이는 아직도 아빠를 찾아갈 수 없다. 주치의였던 민윤식 원장, 엄마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박화백을 만나면서 아빠의 진심을 조금씩 알아가지만 그 진실에 금방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다움이. 2년을 사귀어 온 사라에게서 아빠를 따르던 여진희 고모의 명함을 받아 들고 정다운 생태학교를 찾아가게 된다. 고모를 통해 알게 된 아빠의 진심, 조금씩 아빠를 알게 되고, 아빠를 이해하게 되고, 마침내 찾아간 아빠의 무덤 앞에서 지금까지 참아왔던 속울음을 뱉어내면서 마음 속에 응어리를 끄집어낸다. 가시고기를 읽으면서도 울었고, 가시고기 우리 아빠를 보면서 또 운다. 하지만 그 울음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책 초반 아빠를 이해 못하고 방황하는 다움이를 이해 못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다움이가 참 힘들게 살았을거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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