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천연두 퇴치만큼 국어 교육에 앞장선 지석영

튼씩이 2022. 7. 5. 07:55

치사율 30%였던 천연두를 몰아낸 종두법의 선구자 지석영, 그가 의사인 동시에 국어학자인 사실을 알고 있는가? 1879년 10월, 그는 천연두를 예방할 방법을 배우고자 꼬박 스무 날을 걸어 부산의 제생병원에 도착했고, 지석영의 간청에 감복한 일본인 원장은 그에게 종두법을 가르친다. 대신 일본인 원장은 지석영에게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배우는 데 많이 사용하던 책인 《인어대방(隣語大方)》의 국문 오자를 바로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 일은 지석영이 우리말의 원리를 이해하고 우리말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기 쉬운 한글로 새로운 시대를 꿈꾸다

 

지석영은 부산 제생의원에서 2개월간 종두법을 배우고 두묘(痘苗)와 종두침 두 개를 얻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처가가 있는 충주에 들러 40여 명에게 우두를 놓아 주었다.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첫 번째 종두법이 시행된 것이다. 이후 종두법의 효과를 직접 확인한 지석영은 종두법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더욱 종두 기술과 서양 의학의 습득에 전력을 다하게 된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일본에서 종두법을 배워 왔다는 죄목으로 체포령이 내려지기도 하고, 종두장이 난민들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서울의 우두국을 재건하고 이어 전주와 공주에도 우두국을 세웠다. 1885년 그는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종합하여 ≪우두신설(牛痘新說)≫을 지어 내기도 한다. 지석영은 1899년 국내에 의학교가 설치되어 초대 교장으로 임명된 후 1910년에 사직할 때까지 11년 동안 의학 교육에 헌신한다.


지석영은 의학 공부를 통해 개화에 일찍 눈을 뜬다. 새로운 세계의 지식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세계 정세를 알 수 있는 책과 외국의 과학 기술에 관한 책들을 모으고, 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물을 수집하여 전국에서 뽑아온 젊은이들에게 보이고 가르치자는 야심 찬 계획을 품었다. 지석영은 개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문이 아닌 알기 쉬운 한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어학자로서 각성한 것이다.

 

국문 규범 정비의 절박함을 느끼다

 

“우리나라 사람은 말을 하되 분명히 기록할 수 없고 국문이 있으되 전일하게 행하지 못하여 귀중한 줄을 모르니 가히 탄식하리로다. 귀중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전일하게 행치 못함이요 전일하게 행치 못함은 어음을 분명하게 기록하지 못한 연고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우리말과 글을 정리하는 일에 뛰어든 것은 1896년 ≪대조선독립협회회보≫ 1호에 ‘국문론’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대조선독립협회회보≫는 국내에서 발간한 최초의 잡지로 애국·애민의 뜻을 알리는 데 힘쓴 매체다. 지석영은 ‘국문론’에서 우리말과 글을 정확하게 통일해서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우리말을 글로 쓸 때는 말의 성조를 정확히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했다.

 

신정국문(新訂國文) 모두 6개 항목으로 된 맞춤법 통일안으로, 그 항목은 ① 신정국문 오음 상형변(新訂國文五音象形辨), ② 신정국문 초중종 삼성변(初中終三聲辨), ③ 신정국문 합자변(合字辨), ④ 신정국문 고저변(高低辨), ⑤ 신정국문 첩음 산정변(疊音刪正辨), ⑥ 신정국문 중성 이정변(重聲釐正辨) 등이다. 이는 홍양호(洪良浩)·최세진(崔世珍)·홍계희(洪啓禧) 등의 학설을 종합한 것으로, 국문을 널리 쓰도록 할 것, 닿소리는 △과 ㆁ을 없애 14자로 할 것, 홀소리에는 · 자를 없애고 ㅣ와 ㅡ를 합하여 =라는 새 글자를 만들 것, 된소리는 'ㅅㄱ, ㅅㄷ'처럼 '된ㅅ'으로 표기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반대가 많아 시행되지 못하였으나, 국문연구소(國文研究所)를 설치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05년, 그는 국문개혁안인 ‘신정국문(新訂國文)’을 통해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국문 표기법을 정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듬해 국문연구소 위원에 임명되었다. 1909년에 지석영은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한 ≪자전석요(字典釋要)≫와 국어사전 형식의 교과서인 ≪언문(言文)≫을 펴낸다. ≪자전석요≫와 ≪언문≫의 표기는 당시 한자어 표기의 본보기가 되었고, 우리말 사전 편찬의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석영, 그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우리의 무기가 우리말임을 깨닫고 죽어 가는 이들을 살렸던 손으로 우리말과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국어학자 지석영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의 글 속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1) 종두-법(種痘法)[--뻡]「명사」『의학』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백신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방법.

2) 두묘(痘苗) 「명사」『약학』 두창에 걸린 소에서 뽑아낸 유백색의 우장(牛漿). 한때 천연두 백신의 원료로 썼다. ≒감유01(甘乳)ㆍ우두약.

3) 개화(開化) 「명사」 「1」사람의 지혜가 열려 새로운 사상, 문물, 제도 따위를 가지게 됨. 「2」『역사』조선 시대에, 갑오개혁으로 정치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한 일.

 

*자전석요(字典釋要): 융희 3년(1909)에 간행된 한자 옥편(漢字玉篇)으로, 운서(韻書)의 부속으로 자음(字音)과 자의(字義)를 한글로 달아 한자의 소리와 뜻을 풀이하여 알아보기 쉽게 하였을 뿐 아니라 속음(俗音)도 함께 들고 속자(俗字)도 붙여 근대적 색채를 띠게 한 최초의 옥편이다.

 

*언문(言文) : 1909년, 지석영(池錫永)이 짓고 정기선(鄭驥善)이 교정한 국어사전 형식의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

 

※ 참고 자료


송상용, “지석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한성우, 《근대 이행기 동아시아의 언어 지식: 지석영 편찬 兒學編의 언어 자료》, 인하대학교출판부, 2010.

최경봉, 시정곤, 박영준 공저,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책과함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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