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신 고사성어 - 무용지용 無用之用,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튼씩이 2022. 9. 15. 07:50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자손이 빈한해지면 선산先山의 나무까지 모조리 팔아 버리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줄기가 굽어 볼품없는 나무는 그대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이 속담에는 ‘줄기가 굽은 나무는 쓸모가 없어 팔 데가 없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 있다. 어쨌든 이 쓸모없어 보이던 나무가 쓸모 있는 나무들을 대신해 조상의 묘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 배병우가 찍은 소나무 사진에는 이런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굽어서 산을 지킬 수밖에 없게 돼 버린 나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진에는 얼마나 아름답게 찍혀 있는가. 『장자』 「인간세人間世」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接輿가 말한다. “산에 있는 나무는 사람들에게 쓰이기 때문에 잘려 제 몸을 해치고, 등불은 밝기 때문에 불타는 몸이 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이고, 옻나무는 칠로 쓰이기 때문에 잘린다. 사람들은 모두 유용有用의 용만을 알 뿐 무용無用의 용을 알려 하지 않으니 한심한 일이다.” 미치광이가 이렇게 근사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접여는 가짜 미치광이다. 미친 것처럼 가장해 어지러운 세상으로부터 피해 있던. 그러나 숨어 있어도 ‘초광楚狂’이라 불릴 만큼, 독보적으로 미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이 대단한 미치광이가 한 말을 풀자면, 이렇다. 인간에게 쓸모가 있으면, 명대로 살 수 없다. 하물며 인간이 아닌 것뿐이겠는가. 그렇다면, 물을 수밖에 없다. 무용하다면 자신을 망치지 않을 수 있는가? 쓸모가 없다면 화를 입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장자』 「산목山木」 편을 보자. 장자가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의 사당 앞에 있는 상수리나무를 본다.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로 크고, 백 뼘의 굵기. 열 길 높이 위에 가지가 있고, 배를 만들어도 될 만한 가지만 해도 여남은 개나 된다. 잘 보자. 줄기가 아니라 가지란다. 얼마나 큰 나무인지 짐작도 안 된다. 거들떠보지도 않는 장자. 제자들이 묻는다. “그건 쓸모없는 나무다. 배를 만든다면 가라앉을 것이요, 널을 짜면 썩을 것이요, 그릇을 만들면 깨질 것이요, 문을 만들면 나무 진이 밸 것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먹을 것이다. 아무것에도 쓰지 못하는 나무다. 그래서 그같이 생명이 긴 것이다.” 나무는 쓸모없으므로 이토록 거대해질 수 있었는가? 이야기는 계속된다. 산을 나와 옛 친구 집에 머무른 장자. 친구는 일하는 아이에게 거위를 잡으라고 한다. 한 마리는 잘 울고, 한 마리는 울지 못한다. 어느 쪽을 잡았을까? 울지 못하는 쪽이 이들의 배로 들어간다. 제자 묻기를, “산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는데, 이 집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입장에 머물겠습니까?” 장자는 말한다.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머물고 싶다고. 그러나 그 중간이란 도와 비슷하면서도 참된 도가 아니므로 화를 아주 면하지는 못한다고. 그러면 어떡해야 화를 면할 수 있나? 자연의 도에 따라 유유히 노닌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자 말하길, 용이 되었다가 뱀이 되듯이 신축자재伸縮自在하란다. 늘었다 폄을 자유자재로 하는 게 신축자재다. 참 그럴듯한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말이다. 상황이 바뀌면 나는 바뀔 수밖에 없고, 상대가 변하면 나도 변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살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비록 유유히 노닐지는 못하지만.

 

무용지용 無用之用 無: 없을 用: 쓸 之: 어조사 用: 쓸 뜻풀이: ‘쓸모없는 것의 쓰임’이라는 말로, 별로 쓰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도리어 큰 쓰임이 있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