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찰나의 우리말 - 가족 호칭에 관심이 필요한 이유

튼씩이 2022. 9. 19. 12:54

5월도 벌써 다 가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가족과 관련된 언어 문제를 생각해 보려 한다. 행복한 가족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행복한 가족을 바라고 꿈꾼다. 그런데 행복한 가족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의 시작 부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잘 관찰해 보면 분명히 일반화할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필자가 발견한 행복한 가족이 지닌 행복의 조건은 ‘소통’이다. 행복한 가족들은 공통적으로 가족 사이에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 만나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만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언제든지 모이자 하면 모임이 되고, 모임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문제가 생겨도 서로 소통해서 함께 해결해 간다. 행복한 가족은 이렇게 ‘소통이 원활한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소통이 원활하려면 기본적으로 서로 말을 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는데 소통이 원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 가족 간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가족 호칭 문제가 지목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9년 시행 과제로 ‘성 비대칭적 가족호칭 개선’을 설정한 배경이다. 마침 국립국어원이 2017년과 2018년 수행한 바 있는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실태 조사’와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정책 연구’의 내용에도 가족 호칭 관련 연구 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언어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도 참고하며 과제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성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 문제가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 관계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온 만큼, 여성가족부가 가족 호칭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가정의 날인 5월 15일에는 가족 호칭 문제와 관련한 여성가족부 주관의 토론회도 열렸다. 가족 호칭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한 공론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사실, 가족 호칭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2019년에야 비로소 정부가 주관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확히 언제부터 가족 호칭이 불편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오래된 신문을 보다가 1966년에 가족 호칭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기사는 1966년 2월 17일 ≪동아일보≫에 실린 것으로, 2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윤형연이라는 분이 쓴 글이다. 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글쓴이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7남매의 맏며느리가 된 친구를 만난다.

 

 

네 살짜리 시누이에게 ‘애기씨’라는 소리가 차마 안 나오더라는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미혼의 친구들은 그런 꼬마에게까지 무슨 애기씨라는 호칭을 써야 하냐고 말한다. 글쓴이는 이에 대해 하녀도 아닌데 시댁의 동생들을 ‘도련님이나 작은아씨’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가족이니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 친근하지 않을까라는 자신의 생각을 친구의 어머니에게 얘기한다. 그러자 그 친구의 어머니는 “그 시고 떫은 소리를 말라.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아왔다.”라고 답한다. 이 답을 듣고 글쓴이는 정말 자신의 생각이 시고 떫은 소리인지 물으며 글을 맺는다.

 

1966년 신문에 게재된 이 글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만 53년 전부터 가족 호칭 문제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과 이 문제에 공감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가족 호칭 문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그런데 가족 호칭 문제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가족 호칭이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은 문제가 되는 호칭이 모두 결혼을 하면서 새 가족이 된 여성이 사용하게 되는 호칭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1966년 호칭 문제에 공감했던 20대들이 지금은 70대 이상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호칭을 둘러싼 문제가 세대 간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모든 가족 호칭이 다 문제였다면 모든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졌을 것이니 개선은 더 빨리, 그리고 더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 호칭 문제는 늘 결혼으로 새 가족의 구성원이 된 여성에게 한정된다. 문제의 당사자가 소수인 데다가 가족 내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힘이 없는 개인의 선택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불편함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 아니면 불편함을 회피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가정의 평화는 깨진다. 그런데 출발에서의 불편감은 습관적인 사용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희석된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새 가족을 맞는 사람이 되어 관계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는 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불편함의 고리가 깨지기 어려운 이유다.

 

새 가족 구성원이 가족 호칭 때문에 가족 안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중의 불편함으로 작용하게 된다. 낯선 사람들과 갑자기 가족이 된 것도 불편한데, 호칭도 불편하니 말이다. 누구도 이런 불편한 상황을 즐길 턱이 없으니 만남을 꺼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만남을 꺼리게 된다면 가족은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한 가족을 위해 가족 호칭 문제를 꼭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호칭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사람의 표현으로 고백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호칭은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서 매우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호칭이 내가 인식하고 있는 관계를 담지 못할 때, 화자는 그 호칭으로 상대를 부르기가 꺼려진다. 한편, 내가 듣기를 기대하는 호칭을 상대가 쓰지 않으면, 상대가 생각하는 관계와 내가 생각하는 관계 사이에 거리감을 느끼며 불편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호칭이 미묘한 갈등의 불씨가 되는 이유다.

 

 

그런데 가족 호칭은 우리의 전통이니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평등과 차별의 세계관에 기반한 전통도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면, 왜 대한민국은 오랜 군주제 전통을 지키지 않고 민주주의의 전통을 새로 세웠을까? 또, 우리의 전통이 성차별적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전통은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래서 언어는 사회적 합의가 없이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언어는 하루아침에도 변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적 합의로 식민지 잔재를 언어에서 걷어 냈고, 차별과 불평등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바꿔 왔다. 이제는 가족 호칭에 숨어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요소를 걷어 낼 때다. 가족 호칭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상의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 줄 것이고, 더 행복한 가족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글: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