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우리말을 여행하다 - 의왕시 우리말 여행, 갈미한글공원과 국어학자 이희승

튼씩이 2022. 10. 18. 12:53

가을이 작별을 고하던 11월 마지막 주, 경기도 의왕시 갈미한글공원을 찾았다. 공원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한글 자모를 본뜬 멋들어진 조형물이 맞아 준다. 바쁜 일상을 잠시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여유롭게 한글공원을 거닐어 봤다.

 

 

산책하며 느끼는 한글의 소중함

 

갈미한글공원은 의왕시에서 태어난 일석(一石) 이희승 선생(1896~1989)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만들었다. 공원에는 ‘한글’을 주제로 한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부담 없이 둘러보기 좋게 트인 공원이다. 아늑해서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이기도 하다. 공원 주변으로 모락산 등산로, 백운호수 등이 있어 함께 둘러봐도 좋다.

▲ 조형물 <어울림>

 

갈미한글공원은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눠져 있다. 도로 왼편에는 한글 조형물과 긴 의자가 있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잔디밭에는 <어울림>이란 제목의 조형물이 돋아나 있다. 돌을 ‘ㅅ, ㅇ, ㄱ’ 등의 자음 모양으로 깎아 만들었는데,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로도 쓰이는 게 재미있다. 저 멀리서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누구나 걸터앉아 다리쉼할 수 있는 조형물이기에 친근함이 느껴진다.

 

모든 백성들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간 한글의 모습을 잘 담은 듯하다. 잔디밭을 지나 도로변으로 나오면 한글 자음을 연결해 공 모양으로 만든 <한글의 조형미>라는 작품이 나타난다. 한글 자음들이 상하좌우의 구분 없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 조형물 <한글의 조형미>

▲ 조형물 <나랏말씀>

 

도로 오른쪽에 있는 작은 동산에도 한글 조형물들이 놓여 있다. 그중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나랏말씀>이란 작품이다. 한글 자음 14자를 이용하여 모음의 기본자인 ‘·(하늘), ㅡ(땅), ㅣ(사람)’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곁에 두어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느긋한 걸음으로 15~20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아담한 공원이지만, 볼거리는 충분하다. 아이들에게 한글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주기에도 좋은 장소다. 그러나 의왕시에서 태어난 이희승 선생과 관련된 조형물이나 그의 업적을 알리는 안내문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국어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이희승 선생

 

이희승 선생은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당시 광주시 의곡면 포일리)에서 태어났다. 갈미한글공원에 가면서 그의 생가도 함께 둘러보려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지금은 사라지고 없단다. 2017년 도시관리계획으로 그 일대가 개발되면서 그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 공동 주택이 들어섰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사유지였기 때문에 개발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희승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는 표시 하나 남겨 두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우리말 연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위인’의 생가를 왜 보존하지 않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희승 선생은 소년 시절 주시경 선생의 <국어문법>을 처음 접하고 국어 연구에 뜻을 세웠다. 그는 목표대로 평생 국어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30년 조선어학회에 들어가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 ‘표준어사정(1937)’ 사업에 참여했다.

1942년에는 일본 정부가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고문하고 투옥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다. 해방 이후에 그는 우리말 연구에 더욱 몰두했다. 1961년에는 25만 7,854개의 어휘가 수록된 《국어대사전》을 간행해 국어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이희승 선생은 《조선어학논고》(1947), 《국어학 개설》(1955), 교과서 《초급국어문법》 (1949)과 이것을 보완한 《새고등문법》 (1957) 등 우리나라 문법 체계의 기틀을 다지는 저서를 많이 남겼다.

▲ 검은 모자를 쓴 이희승 (사진 출처: 새국어생활 2012년 겨울 호)

 

특히 《국어학 개설》은 우리나라 국어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집 ≪박꽃≫,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 ≪딸깍발이≫ 등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이희승 선생의 후손과 제자들은 2002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그의 자택 자리에 일석학술재단을 세우고, 2003년부터 ‘일석국어학상’을 만들어 국어학자들을 격려하며 선생의 유지를 잇고 있다. 평생 우리 말글을 향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몸소 실천하며 살다 간 이희승 선생. 그는 왜소한 체구였지만, 그때도 지금도 우리말 역사에 우뚝 서 있는 큰 어른임이 틀림없다.

갈미한글공원에서 시작한 우리말 산책은 집에 돌아와 이희승 선생의 생애를 더듬어 보며 끝이 났다. 수많은 국어학자들의 피땀이 깃든 우리 말글을 더 아껴야겠다는 마음이 솟아난, 짧지만 알찬 나들이였다.

 

 

 

글·사진: 정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