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누구에게나 당연한 문화는 없다

튼씩이 2022. 10. 20. 12:55

외국어 수업 시간에는 취미 활동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 있다. 주로 초급반에서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하면서 배운 말을 연습한다. 주말이나 시간이 있을 때 보통 무엇을 하는지 물으면 가까운 곳에서 산책을 한다거나 영화를 보러 간다는 이야기, 또는 다양한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때 한국어 교재에는 꼭 ‘등산’이 빠지지 않는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산에 가는 그림을 보는 한국어 학습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고산지대에서 온 학생들은 ‘안 그래도 높은 데 사는데, 굳이 등산을?’이라는 얼굴을 하고, 험한 산이 많은 나라의 학생들은 ‘집 주위에 산이 얼마나 높으면?’이라며 갸우뚱한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서 온 학생들은 ‘산에 가면 위험한 사람들을 만날 텐데 왜 산에 가느냐’고도 한다. 땅이 넓은 나라의 학생들은 ‘산에 가기까지 며칠 걸릴 텐데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비록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긴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등산이 언제부터 취미가 되었는지 상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교사들은 익숙하면 그저 한국 문화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떤 외국어 학습에서도 문화를 빼고 언어만 배울 수는 없다. 또한, 한국 문화에 대한 학습자의 관심은 늘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언어 지식이 문화로 연결될 때 한국어 학습자의 눈빛은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겠다는 중학생들과 같이 초롱초롱하다. 그런데 문화 전문가가 아닌 한국어 선생님은 자신의 삶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것을 한국 문화로 집중한다. 문화란 삶 속에서 후천적으로 익혀 온 것이고, 사람은 모든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볼 일이다.

그러면 교재와 교실 수업을 통해 학습자가 흥미롭게 여긴 문화에 어떤 것이 있을까? 유학생들이 말하는 1위는 집들이이다. 교재에 집들이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휴지나 세제를 사 가는 문화가 특별해서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다음은 돌잡이, 수능 선물 등이고, 뒤를 이어 어른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신다는 음주 예절이다. 그런데 이 문화가 과연 유학생들이 경험하기 쉬운 일일까? 한국인의 새집에 초대받거나 돌잔치에 초대받을 유학생, 고3 수험생을 만날 외국인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외국인의 한국어 교육 내용으로 잘 선정된 것일까?

그 외에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화로는 먹거리가 단골손님이다. 떡과 김치, 생일에 먹는 미역국이 한 차례씩 소개된다. 떡볶이, 어묵 같은 길거리 음식과 더불어, 삼계탕과 팥빙수 등 계절 음식도 소개된다. 모두 외국인이 관심 두는 현대 문화이다. 그래도 반 세대 전에 나온 교재들과 비교해 보면 현대 문화가 많이 소개된 점에서 다르다. 한때 교재를 보면 대표 명절인 설과 추석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떡국과 송편, 한복 등이 일색이었다. 그때에 비해 이제는 전통문화에만 집중하지 않지만, 교육 내용의 품질을 높이려면 근본적인 의문이 필요하다.

사람이 사는 곳곳이 문화의 산실이다. 문화의 주머니는 여기저기서 열릴 수 있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교육, 사회, 지리, 예술, 문화유산 등 문화를 담은 보따리는 다양하다. 일상생활 하나만 더 들여다봐도 의식주, 여가와 경제생활, 공공 생활, 가정과 학교 및 직장 생활의 이모저모, 그리고 그 각각에 맞는 흥미로운 언어문화도 있다. 실제로 필자가 외국인으로서 문화 수업을 받을 때 화폐 속 인물이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화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았고, 지하철역의 이름으로 그 도시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학습자의 구체적 요구를 고려할 때 ‘그들의 문화’가 이질감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단언컨대, 한국어 학습자에게 잘 맞는 문화란 한국인이 성장 과정에서 교육받은 것과 다르다. 우선 대상자별로 요구되는 문화가 다르다는 점이 더 고려되어야 한다. 유학생 대상 한국어라면 한국의 대학 문화가, 비즈니스 한국어라면 직장의 내 문화와 예절이 잘 맞을 것이다. 돌잔치, 집들이 등의 문화는 이민자로 살아가는 학습자에게 긴급한 내용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문화에만 집중할 일이 아니다. 세대별 가치관과 직업관, 한국인의 고정관념과 사고방식이 한국 이해에 더 크게 영향 주는 사례도 많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좋은 관계를 이루는 데 기여할 생활 기반 문화도 귀하다. 첫인사를 할 때 알게 될 성과 이름의 순서도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이름을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추측조차 불가능한 사람이 바로 외국인이라 하지 않는가?

글을 마무리하면서 소개할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먼저 ‘우리 동네 채소 가게 아저씨는 나쁘고, 고깃집 아줌마는 친절해요.’라고 한 중국 유학생 이야기이다. 같은 한 근이라도 채소와 고기가 400그램, 600그램으로 다른 한국과 달리, 중국은 한 근이 모든 품목에서 500그램으로 통일되어 있다. 채소가게 아저씨가 외국인을 속인다고 오해한 유학생에게 무게 단위는 중요한 교육 내용이었다. 한편, 미국에서 일 년을 살게 된 한 지인의 이야기도 있다. 국제운전면허증, 병원 등록을 위한 서류를 만들러 갔는데 ‘몸무게가 몇 파운드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몸무게를 파운드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우물쭈물 한 한국인의 그 짧은 순간은 바로 외국인임을 체감하는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면 누구나 같은 처지가 된다. 다만, 누구도 넘어가 보기 전에는 그 상황을 모를 뿐이다. 한국어 교육에 선정될 문화 내용은 바로 그런 것이어야 한다. 한국인으로 성장하면서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이나 시도, 시험 준비로 달달 외웠던 사회 일반적 지식도 한국어 문화 교육 내용으로 당연히 선정될 근거는 없다. 한 개인으로서 익숙한 개별 경험은 더욱더 주의할 사실이다. 어떤 것이 교육과 학습 두 관점에 두루 유의미할 것인가? 오늘은 이 일을 숙제로 남긴다.

 

 

 

 

이미향(영남대학교 글로벌교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