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맛의 말, 말의 맛 - 따로국밥과 섞어찌개의새로운 도전

튼씩이 2022. 12. 26. 12:57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새로운 물건, 새로운 생각이 있으면 그것의 이름을 붙여 줘야 편한데, 아이의 이름을 잘못 지으면 평생 불평을 듣듯이 잘못 만들어진 새말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왕이면 새롭고도 특이한 이름을 짓고 싶겠지만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말은 잘 알려져 있고 흔히 쓰이는 방법으로 만들어질 때가 많다. 그중의 하나가 이전에 있던 단어를 조합해서 만드는 것이다. 점점 좁아지는 병의 입구를 가리키는 새말을 ‘병목’이라고 하거나 도로의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말을 ‘갓길’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 예들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을 다시 활용해 ‘병목 현상’이니 ‘갓길 주행’이니 하는 단어를 더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말은 단어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좀 게으름을 부려 온 편이다. 단어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다면 참신한 느낌을 주는 새말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늘 같은 방법을 쓰니 재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에 있던 단어를 합쳐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것은 어느 말에나 있는 것이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런데 이마저도 우리는 한자를 사용한다. ‘동쪽 바다’라고 해야 할 것을 ‘東(동녘 동)’과 ‘海(바다 해)’를 합쳐 ‘동해’라고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서쪽 바닷가를 막아 뭍으로 만드는 일’을 ‘서해안 간척 사업’이라고 간단하게 줄여 말할 수도 있다. 한자 하나하나가 본래 하나의 단어이니 한자 두셋만 합치면 새로운 단어가 손쉽게 만들어진다. 고유한 우리말을 살려 쓰지 않는 것은 아쉬울 수도 있으나 한자를 이용한 간단한 방법을 굳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모두가 이처럼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에 다소 게을러져 있지만 유독 독특한 방법으로 새말을 아주 열심히 만들어 내는 이들이 있다. 요리사일 수도 있고 음식점 주인일 수도 있는 이들이 그들이다.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면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 줘야 한다. 새로운 말을 만드는 흔한 방법을 이들도 잘 알고 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재료로 찌개를 끓였다 해서 ‘부대찌개’라 이름을 붙이고, 갖가지 쌈을 푸짐하게 쌓아 놓고 먹는 밥이라 해서 ‘쌈밥’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흔한 방법에 의한 것이다.

 

단어의 첫머리를 조합해 만든 음식 이름은 조금 진화한 양상을 보여 주기도 한다. 기존의 불고기에 낙지를 더해서 찌개처럼 끓여낸 것을 ‘불낙전골’이라 하고, 낙지와 곱창을 섞어 볶아 낸 것을 ‘낙곱볶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저 단어를 나열하면 지나치게 길어지니 적당히 잘라 내고 합쳐서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전국 경제인 연합회’를 ‘전경련’으로 줄이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던 방식이다. 한자 하나하나가 각각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줄여도 본래의 의미가 잘 복원된다. 낯설긴 하지만 ‘전국 덤프 트럭 연합회’를 ‘전덤련’으로 줄여도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한글의 특성상 의미 파악이 쉽다.

그런데 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새로운 음식 이름이 지어지게 되는데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따로국밥’이다. 밥, 국, 찌개, 반찬은 우리 밥상의 기본이다. 밥과 국은 다른 그릇에 담기는데 때에 따라서는 국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 그런데 바쁘고 번잡스러운 장터에서 국에 밥을 말아 깍두기 몇 쪽과 함께 내는 음식이 개발되니 그게 바로 ‘국밥’이다. ‘밥’과 ‘국’을 합쳐 만든 단어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 이것이 점차 퍼져 ‘장터국밥’이나 ‘소머리국밥’처럼 쓰이는 것도 늘 있어 왔던 조어법이다.

 

그러나 ‘따로국밥’은 여러 가지로 ‘이상한’ 말이다. 본래 밥과 국을 따로 내는 것이 우리식 상차림인데 이것을 굳이 따로국밥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아무래도 ‘밥’과 ‘국’이 ‘국밥’으로 합쳐지고 이것이 독립된 음식의 하나로 굳어진 뒤에 나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미 국에 밥을 말아서 내는 국밥에 익숙해져 있으니 국밥은 국밥이되 밥과 국을 따로 내는 국밥이 생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말을 만드는 법에 있다. 국어 시간에 배운 대로 하면 ‘따로’는 부사이니 ‘먹다’나 ‘내다’와 같은 동사를 꾸며야 한다. 그러나 ‘국밥’은 명사여서 ‘따로’를 ‘국밥’ 앞에 쓸 수 없다. 그러나 대구의 한 식당 주인은 국어 선생님의 가르침은 아랑곳하지 않고 ‘따로국밥’이란 이름을 지어냈다.

 

‘섞어찌개’는 한 술, 아니 여러 술 더 뜨는 새로운 말이다. 사전의 뜻풀이에 따르면 이 말은 고기와 여러 가지 야채를 섞어서 끓인 찌개를 가리킨다. 고기와 채소를 함께 넣었으니 한자를 쓰자면 ‘육채(肉菜)찌개’라고 하든가 이것저것 섞었으니 ‘잡탕(雜湯)찌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자 대신 고유어를 쓰자면 ‘고기푸성귀찌개’가 될 터이고 줄여 쓰면 ‘고푸찌개’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음식을 만들고 처음 이름을 지은 이는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던 새로운 조어법을 시도한다. ‘섞다’와 ‘찌개’를 합쳐 새로운 단어를 만들려면 ‘섞은 찌개’라 해야 할 텐데 과감하게 ‘섞어찌개’라 한 것이다. ‘덮밥’을 생각해 보면 ‘섞찌개’는 그나마 봐줄 만한데 ‘섞어! 찌개’를 만든 것이다.

 

어법이나 규범에 얽매여서 보면 ‘따로국밥’이나 ‘섞어찌개’는 용납이 안 된다. 부사는 명사를 꾸밀 수 없고, 동사의 활용형 ‘섞어’와 ‘찌개’는 그냥 합쳐져서는 새로운 단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음식을 만들고 이름을 지은 이들은 이 어려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낸다. 사실 어법과 규범을 잠시 잊고 나면 이보다 더 좋은 말을 찾아내기 어려울 듯하다. 국과 밥은 예전부터 있었고, 국밥도 있는데 누군가 그 틈새를 따로국밥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이것저것 섞어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흔한 일인데 또 누군가는 섞어찌개라 이름을 붙여 새로운 음식으로 발전시킨다. 한자에만 얽매이거나 기존의 흔한 조어법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새말들이다.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국밥과 찌개를 좋아하는 외국 요리사가 국과 밥을 따로 내는 국밥, 그리고 고기와 야채를 섞어서 끓이는 찌개를 개발한 후 각각 ‘Rice and Soup’와 ‘Mix Stew’라고 이름 짓는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고 우리 땅으로 역수입된다. 우리 음식이 ‘라이스 앤 수프’로 불리고 ‘믹스 스튜’라 불리니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친다. 말다듬기위원회에서 나서 순화어로서 ‘따로국밥’과 ‘섞어찌개’를 제시한다. 사방에서 난리가 난다.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둥, 반말을 썼다는 둥, 실제로는 전혀 쓰이지 않는다는 둥, 북한 말 같다는 둥......

새말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따로국밥이나 섞어찌개와 같이 기존의 조어법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그 도전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어렵다. 어렵사리 만들어 낸 말도 처음에는 다들 낯설어한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메신저’와 ‘팔로어’가 다른 나라 말이니 순화해야 한다 해서 ‘쪽지창’과 ‘딸림벗’을 제시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린다. 외국어나 외래어를 순화해야 한다는 사람과 애써 바꾼 순화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생각이 말 그대로 따로국밥이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가 쓰는 말은 이처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끓인 섞어찌개일 수밖에 없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