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맛의 말, 말의 맛 - 우동과 짬뽕의 회유 “우짬짜 중에 골라. 난 짜장으로 할래.”

튼씩이 2023. 1. 9. 12:58

중국 음식점에서 흔히 하는 말로 한번 ‘쏘겠다’고 한 이가 주문 첫머리에 이렇게 말을 하면 모두들 김이 샌다. 우동, 짬뽕, 짜장면이 중국 음식점의 대표적인 메뉴이기는 하지만 가장 값이 싼 ‘면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탕수육, 깐풍기, 양장피 등의 ‘요리’ 한두 개는 주문해야 제대로 대접을 하는 것일 텐데 ‘물주’가 이렇게 먼저 말을 하고 나면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중국 음식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이지만 홀대를 받기도 하는 이 ‘우짬짜’는 우리말을 다루는 사람들을 지극히 괴롭혔던 음식이기도 하다. 시중의 ‘짜장면’과 규범 속의 ‘자장면’의 긴 싸움은 둘 다 인정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우동’과 ‘짬뽕’은 표기는 물론 국적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동은 어느 나라 음식인가? 옛날 사람들은 우동을 중국 음식점에서 먼저 접했다. 중국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이니 당연히 중국 음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동 전문점에서 우동을 먼저 접한다. ‘우동(うどん)’이라고 표기된 붉은 천이 휘날리는 음식점에 들어가 보면 가게의 분위기가 전형적인 일본풍이다. 우동만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도 모두 일본식인 것을 보면 우동은 일본 음식이 맞는 듯하다. 일본 음식인 우동도 ‘면’이라는 이유로 엉뚱하게 중국 음식점에서 끼워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일본어 ‘우동’의 기원을 중국어 ‘혼돈(馄饨)’으로 보기도 한다. 이 음식은 얇은 밀가루 피에 고기 소를 넣어 찌거나 끓인 것인데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져 ‘운동(温飩)’이라 불리다 ‘우동’이 되었다고 본다. 본래 만두와 비슷한 음식이었지만 이름만 살아남아 국수의 일종이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본 고유의 음식처럼 자리 잡은 것이 우동인데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와 중국 음식점과 일본 음식점 모두에서 팔리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음식의 국적이 헷갈린다.

 

‘우동’은 한 차례 더 굴곡을 겪게 된다. 일본말이 확실하니 ‘순화’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순화어로 제시된 것이 ‘가락국수’다. 사전에서는 ‘가락국수’를 ‘가락을 굵게 뽑은 국수의 하나’라고 풀이하고 있으니 확실히 알 수 있는 정보는 ‘굵다’는 것 정도이다.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우동’을 ‘가락국수’라고 바꿔 부르라고 한다지만 이것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이는 많지 않다. ‘가락국수’와 ‘우동’은 다른 음식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이것이 굳이 ‘순화’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가락국수’보다 ‘우동’이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는 추세이니 결국은 ‘우동’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짬뽕은 어느 나라 음식인가?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중국 음식으로 여겨지겠지만 의심스러운 면이 좀 있다. ‘짬뽕’은 아무래도 중국말 같지는 않다. ‘짜장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음식 이름에 경음 ‘ㅉ’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이 이름에는 ‘ㅉ’뿐만 아니라 ‘ㅃ’도 쓰였다. 뭔가 이상해 사전이나 규범을 찾아봐도 ‘잠봉’이 아닌 ‘짬뽕’이 맞다. 그런데 오로지 중국 음식점에서만 이 음식을 판다. 적어도 ‘나가사키 짬뽕’을 접하기 전까지 이 음식은 중국 음식이었다.

짬뽕도 중국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음식이다. 짬뽕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중국의 푸젠성 출신의 화교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중국의 ‘초마면(炒馬麵)과 유사한 ‘잔폰(ちゃんぽん)’을 만들어 팔던 것이 한국에까지 흘러 들어온 것으로 본다. 일본의 짬뽕은 맵기는 하지만 고춧가루를 쓰지 않아 흰색을 띄는데 한국에 들어와 고춧가루가 더해져 오늘날의 색과 맛을 갖추게 된다. 짬뽕의 여정이 이러하니 이 음식의 국적을 정하는 것도 역시 어렵다.

 

우동과 짬뽕의 흐름을 좇다 보면 ‘회유(回遊)’라는 말이 딱 어울림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원산지라 할 수 있는 우동과 짬뽕도 일본과 한국을 두루 거치면서 각기 고유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국에는 우동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우동이 국민 음식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다시 중국 음식인 양 자리를 잡았다. 화교를 따라 일본으로 간 음식이 짬뽕으로 재탄생되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시 본래의 국적을 찾아 중국 음식점의 주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음식이 한중일 삼국을 회유하면서 이름이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회유의 역사를 모르는 이들 사이에서는 각각의 음식의 원산지나 국적이 혼란스러워진다. 그것이 ‘회유’다. 강에서 부화한 물고기가 바다에서 잡히면 바닷물고기가 되고, 해류를 타고 한국과 중국 사이의 서해를 떠돌다 우리 배에 잡히면 한국 물고기가 된다.

 

한국, 중국, 일본을 두루 회유하는 음식은 말과 문자의 회유와도 꽤 닮아 있다. 중국이 원산지인 한자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베트남까지 두루 퍼져 나갔고 한중일 삼국은 아직도 쓰고 있다. 음식 ‘혼돈’은 이름과 함께 회유하면서 ‘우동’이 되었다가 ‘가락국수’가 되기도 한다. ‘초마면’ 역시 회유의 과정을 거쳐 ‘잔폰’이라 불리기도 하고 ‘짬뽕’이라 불리기도 한다. 음식의 회유 과정에서 조리법과 재료가 말 그대로 ‘짬뽕’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부르는 말 또한 ‘짬뽕’이 된다. 삼국이 한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음식의 기원을 찾아 공통된 표기를 시도해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짬뽕’이 된 이름의 원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 음식점에서 우동을 처음 먹은 이들에게 우동은 중국 음식이다. 중국 음식점에서 짬뽕을 먹으면서 그 어원을 추적해 본 이들에게 짬뽕은 일본 음식이다. 말의 역사를 알고 음식의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 우동과 짬뽕은 중국 음식이다. 사실 음식점에 가서 이런 말놀이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음식에서 중요한 것은 국적과 원산지, 그리고 어원이 아니다. 그저 맛있고 즐겁게 먹으면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그렇게 대하고 그렇게 먹는다. 몇몇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지나치게 순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삼을 뿐이다.

 

‘짜장면’과 ‘자장면’의 싸움에 비하면 ‘짬뽕’과 ‘우동’은 그리 큰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중국 음식점의 차림표에 나란히 써 있다는 이유 때문에 ‘짬뽕’이 애꿎게 피해를 보긴 했지만 ‘짬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짬뽕’이니 더 이상의 싸움은 없을 듯하다. ‘우동’은 ‘가락국수’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우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사실 ‘스파게티’를 ‘양국수’ 또는 ‘노랑국수’라고 부르자는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우동’이 굳이 ‘가락국수’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한중일 삼국뿐만 아니라 오대양 육대주를 회유하는 음식에 대해 기원과 원주인, 그리고 순수한 표기를 찾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회유하는 모든 것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길이 있다. 회유하는 물고기들도 늘 돌아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말도 그렇다. 사용자의 바다에서 힘차게 헤엄치다 늘 가야 할 길로 간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