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고맙습니다

튼씩이 2023. 1. 21. 07:56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다. 선생님으로서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은 연락을 받는 날은 아무래도 새해 벽두와 스승의 날이다.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 때, 우리는 주위를 돌아보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지난날, 연말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서점을 들르고 카드를 골라, 한 해의 안부와 고마움을 담아 글을 썼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인사를 하는 방법이 많이 바뀌었다. 이런 때 나는 오히려 외국인 제자들로부터 한국어로 된 카드 또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한편으로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멋쩍다.

 올해도 연말과 새해에 인사를 받았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형식은 달라졌지만, 새해 안녕과 건강을 비는 인사말은 정감이 넘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담아 도착한 메시지의 대부분이 ‘새해를 축하합니다.’로 시작한다. 새해가 된 것을 축하한다니…. 한국어 선생님의 습관인 양, 처음 몇 통에 대해서는 바른 표현으로 고쳐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과 같다가 곧 인사로 이해하고자 마음을 굳힌다. ‘축하한다’는 인사는 스승의 날에도 많이 받는다. ‘스승의 날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하루 종일 들어오는데, 특별한 날에 축하한다는 말을 직역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 단지 어색한 표현에 내가 불편할 뿐이다.

 여러 언어에서 축하한다고 하는 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새해 인사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고,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에 보내는 인사로는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외국인 학습자들은 ‘고맙습니다’를 완전히 초급 단계에서 배우기 시작한다.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에 대해 좋은 마음을 드러내는 ‘고맙다’는 말은 어떤 언어에서든 가장 기본이 되는 표현이며, 배움의 동기도 확실하다. 그런데 한국 학습자들이 ‘고맙습니다’를 알아갈 때 겪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선은 발음의 문제이다. 한국어 ‘고맙습니다’는 ‘감사합니다’에 비해 외국인에게 어렵다.
입에서 막히는 한국어의 받침소리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고비는 한자어와 고유어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이다. 많은 한국인이 한자어로 된 ‘감사합니다’를 더 공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감사합니다’가 상대를 더 높이는 표현이고, ‘고맙습니다’는 편한 사람에게 쓰는 것이라고 알려 주는 오류도 범한다. 설령 자신이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교육적 모범으로 보일 답은 아니다. 또 다른 난관은 친구뻘인 한국인 20대들이 무수히 보여 주는 ‘고맙습니다’의 오용례이다. 현지인의 표현은 직관이 없는 외국인 학습자의 언어 사용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수업을 마친 강의실에서, 택시에서 내리면서, 사무실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서는 많은 장면에서 20대들은 흔히 고맙다는 인사 대신 ‘수고하세요’라고 하고 나가 버린다.

 과연 ‘고맙습니다’가 한자어인 ‘감사’에 비해 격이 떨어질까? ‘고맙다’는 말은 남이 베풀어 준 호의로 마음이 즐거운 것이고, ‘감사하다’는 고맙게 여기거나 고마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이는 말이다. 혹 그 두 말이 어떤 위계 관계에 놓여 있는 말이라면, 뉴스를 마치는 진행자가 전 국민 앞에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할 수 없다. ‘고마’는 ‘공경’을 뜻하는 옛말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하는 인사이다.

 우리는 매일 인사를 하고 산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음에 우리 차 한잔해요’와 같은 인사말들은 어찌 보면 영양가가 없는 빈말 표현이다. 그러나 비록 주어와 서술어를 갖춘 문장이 아니라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완벽한 문장보다 더 큰 기능을 한다. 한때 시청률 23%를 넘어선 인기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한 말이 기억난다. 그 주인공은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어, 기차역 분실물센터를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고맙습니다’를 자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고맙다는 인사는 자신의 호의를 드러내는 동시에, 타인의 자존감을 높여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말이다.

 한국말에는 ‘축하하다, 수고하다’마저 대체할 인사말 ‘고맙습니다’가 있다. 이 말의 힘을 빌려 나도 한국어 교육을 함께하는 ‘우리들’로 열두 달을 고민해 주신 여러 분들께 인사드리고자 한다. 한국말 한마디를 가르치는 어느 칠판 앞, 또는 한국어 교재 한 면을 채우느라 애쓰시는 어느 책상 앞의 모든 한국어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미향(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