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우표이야기

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

튼씩이 2023. 1. 24. 13:00

일제강점기에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김상옥 의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군경 1천여 명과 대치했던 ‘일 대 천 서울시가 전투’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는 목숨을 던져 침체에 빠진 독립운동을 되살린 김상옥 의사의 순국 100주년입니다.

가난한 집안의 소년 노동자였던 김상옥 의사(1889-1923)는 형제들과 돈을 모아 동대문 앞 영덕철물점을 창업하여 청년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나 그는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동업조합’을 결성하여 일본 상권에 대항하였고, 1919년에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온 시간과 힘을 다했습니다.



‘혁신단’을 조직하고 비밀신문 ‘혁신공보’에 독립운동 소식을 알리다 일경의 추적을 받은 김상옥 의사는 일제를 직접 타격할 ‘암살단’을 조직했습니다. 1920년 8월에 총독 처단, 일제 주요 기관시설 파괴 등을 계획했으나 아쉽게도 거사 직전에 발각되었고, 일제의 추적을 피해 은신하였다가 그해 10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탈출했습니다. 그곳에서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을 함께했고,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 재조직에 관여했습니다.

1922년 12월에 국내로 돌아와 다시 한번 총독 처단과 일제 주요 기관시설 파괴를 계획하고, 1923년 1월에 총독이 일본제국 의회 참석을 위해 동경으로 가는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의사와 동지들은 첫 행동으로 독립운동가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제를 향해 경고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이후 일제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삼판통(현 후암동) 은신처에서 탈출하여 다시 몸을 숨겼으나, 1월 22일에 서울 효제동 은신처마저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군경 1천여 명으로 둘러싸인 4중 포위망 속에 총격을 벌이다 김상옥 의사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는 한민족의 의기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우리 민족은 3·1운동 이후 독립에 대한 희망과 결의를 다시 다지게 되었습니다.

기념우표에는 상해에서 찍은 김상옥 의사의 유일한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초상화와 태극기 아래 종로경찰서에 투탄한 의거 장면을 담았습니다. 성공한 사업가의 삶을 뒤로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준 김상옥 의사의 삶을 우표와 함께 되새겨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