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가운데 일본어 더빙 영상이 화제다. 학교 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성인이 되어 가해자에게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에서 일본어 성우가 “화이또, 바쿠욘진!”, “욘진, 가꼬이!”라고 외친다. 긴장감 넘치는 우리말 대사와 달리 가벼운 느낌을 준다. 해당 영상을 본 누리꾼 대다수는 일본어 더빙이 드라마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국어 더빙이 대사의 ‘말맛’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언어는 말소리나 말투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른 느낌을 준다. 따라서 우리말 대사를 일본어로 바꾸면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원작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빙판은 지양해야 할까?
자막? 더빙?
또 다른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역시 여러 언어로 된 음성 더빙이 제공됐다. 드라마가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며 해외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자막으로 볼지 더빙으로 볼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의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는 누리소통망에 자신이 ‘오징어 게임’의 팬이라고 밝히며 영어 더빙보다 원어로 시청할 것을 추천했다. 한국 배우들의 연기를 더빙으로 제대로 살릴 수 없기 때문에 드라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자막판’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타이카 와이티티의 트위터
자막판과 더빙판은 주로 개인의 선호에 따라 선택된다. 자막판을 선호하는 사람은 배우의 연기와 대사의 어조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고, 더빙판을 선호하는 사람은 자막에 신경 쓰지 않고 화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외국인들, 특히 영미권 사람들은 자막판보다 더빙판을 선호한다. ‘1인치의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인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더빙
영화 ‘기생충’으로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영미권에서는 자막을 읽는 것이 부담스러워 외국 영화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작품 속 자막의 크기 ‘1인치’를 장벽에 비유한 표현이다. 넷플릭스의 더빙은 ‘1인치의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자막 때문에 생긴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단연 케이(K)-콘텐츠이다. 더빙은 외국 시청자들에게 케이 콘텐츠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어서 한국 작품 흥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넷플릭스 자체 드라마 ‘킹덤’은 독일어, 중국어, 터키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태국어, 영어, 일본어로 총 9개의 더빙판이 제작됐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케이-콘텐츠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향후 4년간 넷플릭스는 미화 25억 달러를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문화의 힘은 막강하다.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고 갈등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문화 강국 한국의 콘텐츠가 큰 인기를 얻는 것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언어의 장벽은 높아서, 우리말 대사를 그대로 시청하는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낯설다. 더빙이라는 차선책이 있지만, 우리말의 '말맛'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우리말 소리의 맛
더빙은 분명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더 많은 시청자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드라마 ‘더 글로리’의 일본어 더빙판처럼 명장면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더빙은 아쉽다. 우리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현지 음성과 자막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지 음성으로 보면, 원어의 느낌 그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콘텐츠를 한국어 음성과 자막으로 보는 것이 익숙해지면, 한국 콘텐츠를 더욱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말 소리의 매력에 빠질 수도 있고, 계속해서 한국어를 듣다 보면 우리말을 배우고 싶어질 수도 있다. 더빙의 장점도 있지만,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한국의 콘텐츠를 아름다운 우리말 소리로 시청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김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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