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한국 독립운동을 돕고 일제에 대항했던 외국인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특히 실존 인물을 재현한 작품이 많아 당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외국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기념우표에서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대표적 인물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와 조지 루이스 쇼를 소개합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한국명: 석호필)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의학자이자 선교사이며, 1916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세균학 교수로 한국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1919년 3·1운동 첫날부터 사진을 찍고 기록하여 해외에 알렸으며,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 사건 현장에도 찾아가 일제의 만행을 보고서로 남겼습니다. 캐나다에 돌아가서도 그는 틈틈이 강연과 기고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알리며 일제를 비판했습니다. 광복 이후에 다시 내한하여 수의병리학을 가르쳤고, 강연과 언론 기고에서 한국인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1970년 4월 12일에 서거하여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조지 루이스 쇼(1880~1943)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중국 안동현(현 단둥)에서 무역업과 선박업을 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연락망 조직인 ‘연통제‘의 운영을 돕기 위해 자신의 무역선박회사 ’이륭양행‘에 교통사무국을 설치한 일이 대표적입니다. 1919년 3·1운동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돕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선박을 이용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입출국을 지원하고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활동을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1920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쇼는 안동으로 돌아간 후에도 1938년까지 계속 독립운동을 돕다가 1943년 11월 13일에 푸저우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부는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이번 기념우표에는 두 사람의 모습 및 업적과 관련된 자료를 담았습니다. 변지 좌측에는 스코필드가 3·1운동 당시 모습을 촬영한 대한문 앞 만세시위 사진이 있고, 그 아래에는 사진기로 촬영하는 모습을 담은 스코필드의 동상(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 소재)이 있습니다. 우측 상단에는 쇼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는 1920년 8월 11일 자 동아일보 기사와 일본을 방문했던 쇼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우표를 감상하며 광복절을 맞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들의 공로를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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