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 1201호

튼씩이 2023. 8. 16. 09:29

 

어찌보면 가장 깨끗하고 정직해야 할 교육계에서 헐값으로 인력을 부려먹고 그렇게 자란 인재가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조직에 순응함으로써 미래를 망쳐버리는 현실에 실망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연구와 논문 작성 등 더 나은 교육 환경에 힘써야 하는 고급 인력이 최저시급도 안 되는 월급(?)에 4대 보험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우아하고 고상한 곳이라 생각하며 선망의 눈초리로 보아왔던 지난날이 다 허상임을 안 순간 교육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가지게 한다. 어느 조직이나 자신만의 시스템이 있고 그 환경 속에서 지속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게 일반적이라 하지만 교육계만은 미래를 위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는 또다른 과제를 가지고 있음에 다른 조직과는 다른 깨우침이 더 일찍 와야 하지 않을까 바라본다.

 

 

현직 대학 시간강사가 쓴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삶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 사회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고스란히 담은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연재되기 시작해 큰 관심을 얻은 동명의 에세이 연작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나는 서른둘, 지방 대학교 시간강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시리즈는 지방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시간강사로 살아가고 있는 저자가 자신이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유머’ 연재 이후에는 인터넷 언론 매체 〈슬로우뉴스〉에 시간강사로서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만난 이야기를 담은 2부가 연재되며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대학을 추억하고 소망하며 읽고 나눈 덕에 ‘오늘의 유머’와 〈슬로우 뉴스〉, 그리고 웹진 〈직썰〉에까지 총 200만에 달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고 비장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이어지는 글들은 저자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동안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들을 오히려 담담한 어조로 펼쳐내고 있다. 제도권의 삶이 비루하다고 불평하지도, 내가 이렇게 힘드니 좀 봐달라고 징징대지도, 이러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한 청년이 이렇게 꿋꿋이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 있다고 보여줄 뿐이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이때에 제도권에서 살아가는 이 청년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고, 그래서 8090세대 청년들에 대한 세대성의 가슴 서늘한 기록이 된다. 젊을 땐 좀 아파도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불평만 한다는 식의 기성세대의 일갈에 대한 답으로서, 꿈을 가진 한 청년이 얼마나 ‘노오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꿈 때문에 현재를 얼마나 처절히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담백하고 절제된 문장들의 사이에서 읽어낼 수 있다.

 

인문학 전공의 매력에 빠져 대학원에 진학한 저자는 좋아하는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할 줄 알았으나, 상아탑 안에서의 생활은 고매하기보다 고되었다. 1부 〈대학원생의 시간〉을 지배하는 주제는 바로 이때의 ‘고군분투’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인 만큼 부모님께 기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며 분투해야만 했다. 저자는 제도권 안에서 연구자로 거듭나기 위해 공부하느라 노력하고, 장학금을 보전받기 위해 대학 곳곳에서 갖은 행정 업무를 수행하느라 노력하고, 후학으로서, 제자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업을 제외한 일과 시간을 온전히 조교 일에 쏟아붓지만 조교 장학금이 등록금에조차 못 미쳐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고, 생활에 필요한 돈을 위해 갖은 아르바이트도 하며, 그 와중에 공부도 해야 한다. 대학 행정의 최전선은 대학원생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지고, 덕분에 학업에 꿈을 품고 제도권의 삶에 편입된 젊은 학자들은 역설적으로 공부와 연구에 충실할 수가 없다.
그가 담담하게 미메시스적으로 펼치는 삶의 장면들에는, 이 역시 사람의 이야기임을 알리듯 뜨거운 감정들이 배어 있다. 독립된 사회인의 몫을 하지 못하는 떳떳치 못한 아들이라 부모님께 죄송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하여 간신히 퇴직한 부모님께 건강보험이나마 해드릴 수 있어서 보람을 느끼고, 직장인이 된 친구들과 멀어지고 사회에서 만난 이들과도 어울릴 수 없음을 자조하며 사무치는 외로움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마음 한편이 미안해진다. 자신의 꿈을 좇아 묵묵히 삶을 버티고 있는 이 청년은, 과연 달관할 수 있을까.

 

명문이 아닌 지방의 학교에서, 위기가 아닌 때 없던 인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며, 학생도 교수도 아닌 캠퍼스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바꾼 대학의 풍경을 생생히 보여줄 수밖에 없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추앙받는 대학은 사실 기민하게 자본의 논리에 영합하여, 인문학은 돈 안 되는 학문으로 폄하되고 대학원생들은 대학의 인적 자원으로서 ‘열정 페이’를 강요받는다. 그들이 ‘잡일’에 쓰이지 않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명목상의 강의 시간 외에 수업 준비와 과제물 첨삭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에 매몰되는 시간강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 4대 보험 보장은 수지타산에 필요하지 않은 일이 된다. 에피소드의 낱낱은 개인의 특정한 기억이지만, 이 장면들을 불러온 사회와 그 풍조를 사유한다면 이는 생생한 사례가 된다.

지방시를 쓰며 나는 대학이 가진 맨얼굴을 한 번쯤 내어 보이고자 했다. 내부 고발이나 처우 개선 요구와 같이 거창하거나 감당 못할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한 세대가 있음을 기록하고자 했다. 동정이 아닌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었고, 허울 좋은 ‘교수님’이나 ‘연구자’가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사회인’이자 ‘노동자’로서 내 삶을 규정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한발 더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_〈프롤로그〉 중에서

연재 당시 기사화될 정도로 주목받았던 주제 중 하나는 그가 시간강사임에도 건강보험을 위해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쉽게 신자유주의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맥도날드에서, 저자는 노동자로서 대학에서보다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었다. 맥도날드는 최저임금을 보장해주고 4대 보험을 해결해주고, 다쳤을 때에 산업재해 처리를 해주고 치료비를 지급해준다. 이와 비교할 때 대학이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지성인 젊은 연구자들을 키워내고 응당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대학이 그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맥도날드에서의 아르바이트는 건강보험과 생활비를 위해 시작한 것이었지만, 최저시급으로 대변되는 삶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새로이 발견하는 계기도 되었다. 2부의 12장의 제목인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에 대해 단순히 어법상 틀린 말이라고 지적하기보다는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이 시대의 정신이 무엇인지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대학 신입생들이 대학에 들어와 처음 접하고 제도권의 말과 글에 익숙해지게 돕는 ‘대학 국어’로, 저자가 고등교육에 갓 진입한 학생들과 함께 ‘알바생’의 문법이나 웹툰의 맞춤법과 같이 피부에 닿는 곳에서부터 인문학을 개진해나가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시간강사로서의 삶을 다룬 2부 〈시간강사의 시간〉에는 이처럼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만나며 겪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학생들을 또 다른 ‘지도 교수’로 여기며 그들과 소통한 바를 토대로 더 나은 교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강사로서의 성찰을 녹여낸 것이다. 연구자로서 제도권 안에서 밥벌이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강의였지만, 저자는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더 폭넓게 사유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어 ‘교학상장’할 수 있었기에 논문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 강의실에서, 이 ‘젊은 교수님’은 20대 초입 청년들의 고민을 곁에서 함께해주는 동반자이자 조력자가 된다. 강사와 수강생이라는 관계를 넘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8090세대 청춘들로서 동시하는 것이다. 강박적일 정도로 신중한 이 연구자가 조심스럽게 학생들을 도우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은 은근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학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수도 아닌 경계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후회한단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어렵게 입을 열었다. L이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는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돌이켜 스무 살의 나에게 어느 길을 걷겠니, 하고 다시 묻는다면, 역시 죽을 만큼 고민할 거야. 지금 행복하냐고 물으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어……. 그런데 적어도 나에게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는 않았단다. 그래서……”
나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남은 한마디를 하려 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 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L이,
“그러면 버틸 수 있다는 거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가 답을 내주었다. 나는 어제 후회했고, 오늘 후회하고, 내일도 후회할 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건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기 때문, 인가 보다. _2부 14장 〈후회하지 않으시나요?〉 중에서

연재하던 당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지방대’라는 출신에 따라 대학 문제를 논할 자격론이나 공부를 할 머리가 아니라는 등 인신공격적인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출간조차 필명으로 하는 것에 대해 그 진심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처음에는 신분을 숨기느라 필명을 쓰기 시작했지만, 저자가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같은 세대 청춘들이 있음을 목도하였고 또 이 고단한 삶이 동시대인들에게 많은 응원을 받게 된 이상 이 글은 더 이상 특정될 필요가 없는, 특정되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된다. 그가 몸담아온 학교명이 밝혀지면 그의 삶은 그 학교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정한 삶이 되어 구분되고, 대입 배치표에서의 위치로 이 글의 가치가 변동될 것이 빤하다. 저자는 지식 자본으로 노동할 뿐, 사회인으로 몫을 하고 기능하기 위해 분투하며 노동하는 8090세대 청춘 노동자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노오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처음 글을 쓸 때에는 서로를 몰라주고 착취하는 동료들에게 날을 세웠던 저자는, 이내 제도권에의 제도 아래서 모두가 피해자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같은 ‘헬조선’의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요즘의 청춘이 이러하구나, 그저 알아주고, 또 같은 세대로서는 사회인의 문법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저들의 삶도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 알아주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로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프롤로그〉)를 꼽는 저자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과 시대를 박제하는 사료(史料)가 된다. 각자도생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청춘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