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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치르다/치루다

튼씩이 2015. 11. 25. 12:08

삶과 함께하는 우리말 편지

2015. 11. 25.(수요일)

흔히 쓰는 '치루다'는 '치르다'의 잘못입니다.
큰일을 치루는 게 아니라 치르는 것이며,
영결식도 치루는 게 아니라 치르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새벽에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이곳 전주는 지금 비가 내리는데 여기도 눈이 내리길 기대합니다. ^^*

어제 보낸 편지에서 제 실수가 있었습니다.
'빈소'를 설명하면서 "당을 당하여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곳"이라고 했는데,
'당을 당하여'가 아니라 '상을 당하여'입니다.

편지를 써 놓고 몇 번을 읽어봐도 그게 왜 안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오늘도 어제 이야기 이어보겠습니다.
돌아가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내일 국가장으로 치릅니다.
격식과 품위를 갖춘 영결식을 치르고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치르다'는
"주어야 할 돈을 내주다."는 뜻으로, 잔금을 치러야 한다, 옷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왔다처럼 쓰고,
"무슨 일을 겪어 내다."는 뜻으로, 시험을 치르다, 잔치를 치르다, 큰일을 치렀으니 몸살이 날만도 하지처럼 쓰며,
"아침, 점심 따위를 먹다."는 뜻으로는, 아침을 치르고 대문을 나서던 참이었다처럼 씁니다.

흔히 쓰는 '치루다'는 '치르다'의 잘못입니다.
큰일을 치루는 게 아니라 치르는 것이며,
영결식도 치루는 게 아니라 치르는 것입니다.

아마도, '치루다'는 의사선생님들만 쓸 수 있는 말일 겁니다.
치질 환자를 보는 의사선생님이 "어, 이거 치핵이 아니라 치루다."라고 하실 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헛으로와 허투루]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일터에 나와서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창밖으로만 꽃을 봤습니다.^^*

어제 아침 8:52,
MBC에서 예전에 방송한 연속극을 다시 보여주면서
'인생을 헛으로 살지 마라'는 자막을 내 보냈습니다.

오늘은 '헛으로'를 좀 짚어볼게요.
'헛'은 일부 이름씨 앞에 붙어 '보람 없이'나 '잘못'이라는 뜻을 더하는 앞가지(접두사)입니다.
따라서 인생을 헛으로 살지 말라고 하면
삶을 보람 없이, 또는 함부로 살지 마라는 뜻이 될 겁니다.
'인생을 헛으로 살지 마라'는 자막을 딱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그때 쓰는 말은 '헛으로'가 아니라 '허투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허투루'는 어찌씨(부사)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허투루 말하다, 허투루 쓰다, 손님을 허투루 대접하다, 할아버지 앞에서는 말을 한마디도 허투루할 수가 없었다처럼 씁니다.

따라서
'인생을 허투루 살지 마라'라고 하는 게 말이 되고,
그 뜻은
삶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뜻이 될 겁니다.

'허투루'...
뜻을 별로지만
멋진 우리말입니다. ^^*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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