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142

(얼레빗 제4794호) 3.1만세운동의 도화선, 도쿄 2.8독립선언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위는 3.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도쿄 2.8독립선언서의 일부분입니다. 1910년 조선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한일강제병합"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로부터 9년 뒤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청년들은 조국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1919년 1월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한 뒤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와 를 만들었습니다. ▲ 2.8독립선언서 전문(재일본 한국YMCA 제공) 그리고 2월 8일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정부, 일본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기독교청년회관에서 ..

비 오는 가을밤에 – 최치원, 「추야우중」

비 오는 가을밤에 – 최치원, 「추야우중」 가을바람 쓸쓸하고 애처로운데 秋風惟苦吟 세상에는 알아줄 이 별반 없구나 擧世少知音 창밖에 밤은 깊고 비는 오는데 窓外三更雨 등잔불만 고요히 비추어 주네 燈前萬里心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한시 「추야우중(秋夜雨中, 비 오는 가을밤에)」입니다. 6두품 집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신라에서는 아무리 뛰어나도 6두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868년 12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납니다. 당나라에 간 최치원은 “졸음을 쫓기 위해 상투를 매달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이 백을 하는 동안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라는 기록을 남길 만큼 열심히 공부했지요. 그 결과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합격했습니다. 이..

주인은 어찌하여 또 채찍을 휘두르나 – 인목황후, 「칠언시」

주인은 어찌하여 또 채찍을 휘두르나 – 인목황후, 「칠언시」 늙은 소 논밭갈이 힘쓴 지 이미 여러 해 老牛用力已多年 목 부러지고 살갗 헐었어도 잠만 잘 수 있다면 좋으리 領破皮穿只愛眠 쟁기질, 써레질도 끝나고 봄비도 넉넉한데 犁耙已休春雨足 주인은 어찌하여 또 채찍을 두드리나 主人何苦又加鞭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가 큰 글자로 쓴 칠언시(七言詩)입니다. 크기는 세로 110cm, 가로 50cm이고 종이에 쓴 것으로 근대에 족자로 만들어졌는데,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칠장사(七長寺)에 소장되어 있지요. 광해군 5년(1613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사약을 받고 죽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해 인목왕후가 칠장사를 원당(願堂)으로 삼아 중건하면서..

대자리에서 방구부채를 부치다 – 기대승, 「하경」

대자리에서 방구부채를 부치다 – 기대승, 「하경」 대 평상에 자리 깔고 편한 대로 누웠더니 蒲席筠床隨意臥 쳐놓은 발 사이로 실바람이 솔솔 불어 虛鈴疎箔度微風 방구부채 살살 흔드니 바람 더욱 시원해 團圓更有生凉手 푹푹 찌는 더위도 오늘 밤엔 사라지네 頓覺炎蒸一夜空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하경(夏景, 여름날 정경)」입니다. 옛 선비들의 여름나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에어컨 바람과 함께, 또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여름나기를 하지만 고봉은 그저 평상에 왕골대자리를 깔고 방구부채를 부칠 뿐입니다. 기대승은 어려서부터 독학하여 고전에 능통했습니다. 나이가 26세나 위인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8년 동안이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후세 유학자들 가운데 이를 말하지 않은 이가 ..

봄은 보이는 것 밖에 있다네 – 이서구, 「유춘동」

봄은 보이는 것 밖에 있다네 – 이서구, 「유춘동」 숲 속에는 향기가 끊이지 않고 林華香不斷 뜰 풀은 새롭게 푸르름이 더해지지만 庭草綠新滋 보이는 것 밖에 언제나 있는 봄은 物外春長在 오직 고요한 사람이라야 알 수가 있지 惟應靜者知 조선 후기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과 더불어 ‘사가시인(四家詩人)’으로 불린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 한시 「유춘동(留春洞, 봄이 머무는 마을)」입니다. 숲은 온갖 꽃이 흐드러져 한 폭의 수채화인 듯합니다. 꽃보라 속에서 꽃멀미도 한창일 때고요. 그러나 이서구는 보이는 것 밖에 언제나 있는 봄도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 봄은 오직 고요한 사람이라야 알 수가 있다고 하지요. 그 봄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고요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천만 길의 큰 빗으로 탐관오리를 쓸어버려야 – 유몽인, 「영소」

천만 길의 큰 빗으로 탐관오리를 쓸어버려야 – 유몽인, 「영소」 얼레빗으로 빗고 나서 참빗으로 빗으니 木梳梳了竹梳梳 얽힌 머리털에서 이가 빠져나오네 亂髮初分蝨自除 어쩌면 천만 길의 큰 빗을 장만하여 安得大梳千萬尺 만백성의 이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까 一歸黔首蝨無餘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설화 문학가로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談)』을 쓴 유몽인(柳夢寅)의 「詠梳(영소, 얼레빗으로 빗고 나서)」라는 한시입니다. 얼레빗은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으로 반달 모양으로 생겨서 ‘월소(月梳)’라고 하지요. 또 참빗은 빗살이 매우 촘촘한 빗으로 얼레빗으로 머리를 대강 정리한 뒤 보다 가지런히 정리하거나 비듬, 이 따위를 빼내기 위해 썼습니다. 이 시에서 재미난 것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이(蝨)에 비유하여 읊은 것..

명기 매창의 아름다운 한시 – 매창, 「청계」

명기 매창의 아름다운 한시 – 매창, 「청계」 아름다운 뜰에 배꽃은 피고 두견새 우는 밤이어라 瓊苑梨花杜鵑啼 뜰에 가득 쏟아지는 달빛은 처량하기만 하구나 滿庭蟾影更凄凄 그리운 님 꿈에서나 만나볼까 했지만 잠마저 오지 않고 想思欲夢還無寢 매화 핀 창가에 기대서니 새벽 닭 우는 소리만 들리누나 起倚梅窓聽五鷄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하나로도 불리는 매창(梅窓)이 지은 「청계(聽鷄)」 곧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라는 시입니다. 달빛이 가득 쏟아지는 봄밤, 꿈속에서나마 님을 만나보려 했지만 잠은 안 오고 매화 핀 창가에 기대서니 새벽 닭 울음소리만 처량합니다. 시인 유희경과의 가슴 시린 사랑이 매창의 시 한 편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매창은 전라북도 부안의 명기(名妓)로 시와 가무에 능했..

겨울 눈과 봄의 꽃은 모두 참이 아니다 – 한용운, 「견앵화유감」

겨울 눈과 봄의 꽃은 모두 참이 아니다 – 한용운, 「견앵화유감」 지난 겨울 꽃 같던 눈 昨冬雪如花 올 봄 눈 같은 꽃 今春花如雪 눈도 꽃도 참이 아닌 것을 雪花共非眞 어찌하여 마음은 미어지려 하는가 如何心欲裂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옥중에서 쓴 「견앵화유감(見櫻花有感, 벚꽃을 보고)」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꽃 같았고, 봄에는 꽃이 눈인 듯합니다. 눈도 꽃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눈과 꽃에 마음을 빼앗기지요. 한용운 같은 위대한 선각자도 눈과 꽃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데 중생이야 어쩌겠습니까? 일제강점기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는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으며, 일제강점기 큰스님 만공선사는 ..

여종 신분으로 한시 166수를 남기다 – 설죽, 「낭군거후」

여종 신분으로 한시 166수를 남기다 – 설죽, 「낭군거후」 낭군님 떠난 뒤에 소식마저 끊겼는데 郎君去後音塵絶 봄날 청루에서 홀로 잠들어요 獨宿靑樓芳草節 촛불 꺼진 창가에서 끝없이 눈물을 흘리는 밤 燭盡紗窓無限啼 두견새 울고 배꽃도 떨어지네요 杜鵑叫落梨花月 조선시대 천한 신분의 여종 설죽(雪竹)이 남긴 「낭군거후(郎君去後)」라는 한시입니다. 선비들이 설죽의 실력을 알아보려고 ‘만일 자신의 낭군이 죽었다고 치고 시를 한 수 지어 보라’는 말에 지은 시라고 전해집니다. 한다하던 선비들이 모두 설죽의 시를 듣고 감탄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만큼, 설죽은 명시를 지어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요. 이렇게 설죽이 지은 시는 조신 중기의 시인 권상원(權尙遠) 시집 『백운자시고(白雲子詩稿)』 끝 부분에 모두 166수..

율곡이 칭송한 ‘백세의 스승’ - 김시습, 「산거집구」

율곡이 칭송한 ‘백세의 스승’ - 김시습, 「산거집구」 천산과 만산을 돌아다니고 踏破千山與滿山 골짝 문을 굳게 닫고 흰구름으로 잠갔다 洞門牢鎖白雲關 많은 소나무로 고개 위에 한 칸 집 지으니 萬松嶺上間屋 승려와 흰 구름 서로 보며 한가하다 僧與白雲相對閑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쓴 한시(漢詩) 「산거집구(山居集句)」입니다. ‘집구(集句)’란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씩 따와 새로운 시를 짓는 것으로, 운자(韻字)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창작 이상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이지요. 이 작품에는 떠돌이 삶을 산 자신의 모습과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골짝 문을 굳게 닫고 흰구름으로 잠갔다”라든가 “승려와 흰 구름 서로 보며 한가하다”라는 시구에서는 김시습이 뛰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