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러 기업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합니다. 신제품에는 전에 없던 혁신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말이죠. 대중은 신제품을 두고 유용해 보인다거나 전작이 낫다는 등의 평가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혁신’이라고 불리는 각종 기능을 제대로 이해했을까요? 그리고 누리집에 나와 있는 현재 사용하는 기종의 설명을 보여주면 몇 명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단어로 가득한 스마트폰 설명
“요긴한 각종 알림과 ‘실시간 현황’ 정보를 그때그때 띄워주는 Dynamic Island. 덕분에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놓치지 않고 한눈에 쉽게 확인 할 수 있죠. 호출한 택시의 픽업 안내, 전화 발신자, 항공편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꼭 필요한 순간에 바로 확인할 수 있답니다.”
위는 애플 공식 누리집에서 볼 수 있는 아이폰 15의 설명입니다. 주력으로 선보이는 기능인 ‘다이내믹 아일랜드(Dynamic Island)’의 내용인데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기능의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따로 번역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공식 누리집에서는 표기
조차 ‘Dynamic Island’라는 영문을 사용합니다.
“A16 Bionic 칩은 강력한 파워로 다양한 종류의 첨단 기능을 구동합니다. 24MP 사진과 한 차원 높은 인물 사진을 구현해내는 컴퓨테이셔널 포토그래피. 통화 중 ‘음성 분리’ 모드. 고사양 그래픽이 요구되는 게임도 매끄럽게 구동하는 거침없는 성능. 여기에 뛰어난 배터리 사용 시간과 전력 효율까지. 괜히 프로급 칩이 아니죠.”
스마트폰의 성능을 알려주는 대목에서도 어려운 단어가 많습니다. ‘A16 Bionic 칩’, ‘24MP 사진’, ‘컴퓨테이셔널 포토그래피’ 등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단어가 많습니다. 애플이 해외 기업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갤럭시 Z 플립 사상 최대 크기의 커버 스크린, 플렉스 윈도우”
“새로운 플렉스 힌지를 장착한 갤럭시 Z 플립5는 접으면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그립감까지 뛰어납니다.”
삼성 공식 누리집의 갤럭시 Z 플립5 설명글입니다. 삼성 또한 새 기종의 이름과 더불어 주요 기능의 이름을 영어로 지었습니다. ‘커버 스크린’, ‘플렉스 윈도우’, ‘플렉스 힌지’, …. 이름만으로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핵심 기능으로 소개합니다. 영어가 섞인 복잡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모르는 단어를 몇 번이고 검색해야 하니 번거롭습니다.
이미 ‘윈도 95’라는 좋은 선례 있어
외국어가 들어가는 복잡한 설명은 정보 기술 산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1995년,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윈도 95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윈도 95는 완전히 새로운 체계를 도입했기 때문에 ‘데스크톱(Desktop)’, ‘숏컷(Shortcut)’, ‘페이버릿(Favorite)’ 등 생소한 개념이 많았습니다. 이후 한국에 윈도 95를 들여오면서 ‘바탕화면’, ‘바로가기’, ‘즐겨찾기’ 등 새로운 개념을 우리말로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한글화된 단어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잘 쓰이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생긴 개념이라고 해서 반드시 원 어 그대로 쓸 필요는 없는 것이죠. 과거와 비교해 우리말 번역이 소홀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큰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은 외국에서의 새로운 개념을 굳이 우리말로 옮길 필요가 없으니 원문 그대로 표기합니다. 낯선 개념 대부분을 새로운 우리말로 옮긴 윈도 95에 비하면 사용자 중심의 사고가 부족해진 것이죠.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은 삶을 편리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기능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접근성이 떨어지고, 널리 사용되기도 어렵겠죠. 모두가 새로운 기술이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려면 기업의 단어 선택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용자가 신제품의 기능을 동등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능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필수입니다. 예전 ‘데스크톱’을 ‘바탕화면’으로 바꾸었던 번역팀의 노고처럼 말이죠.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안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