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음식과 건강] 2, 바다의 생명력을 머금은 한 점, 골뱅이 숙회

튼씩이 2026. 5. 10. 17:31

날이 따뜻해지면 몸이 한 번 더 탁해진다. 봄의 피로가 지나간 것 같은데도 머리가 맑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다. 속은 더부룩하고, 몸은 묘하게 무겁다. 이때의 변화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겨울 동안 모였던 것이 풀리고, 봄에 올라온 기운이 머물면서 몸 안에 ‘정리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벼운 음식을 찾는다. 그 가운데서도 바다에서 온 것, 특히 골뱅이와 소라 같은 조개류를 찾게 된다. 그 까닭은 다양하지만 결국 맛있기 때문이다. 왜 맛있는가를 궁리하면 답이 나온다. 하나는 나에게 필요한 성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음식은 내가 필요로 하고 소화할 수 있을 때 맛있게 느껴진다. 다음으로는 실제 재료가 좋기 때문이다. 골뱅이와 소라 같은 조개류의 생명력이 가장 응축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개류는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산란을 준비한다. 산란을 앞둔 개체는 자신의 생명을 다음 세대로 넘기기 위해 몸 안에 영양과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축적한다. 곧 이때의 골뱅이와 소라는 단순한 먹이가 아니라 “생명을 준비하는 상태의 응축된 존재”다. 그래서 같은 골뱅이라도 이 시기에 먹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신선한 참골뱅이 회나 잘 삶아낸 골뱅이를 한 점 집어 먹으면, 쫄깃한 식감과 함께 머리가 맑고 가벼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필자는 20대 초반, 동해를 여행하며 참골뱅이 회를 먹고 이 감각을 분명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 소주 한 잔을 마시면 술기운이 올라오고, 참골뱅이를 한 점 먹으면 맑은 기운이 올라와 술기운을 정화해 다시 머리가 맑아지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술기운과 막상막하의 기운을 경험한 것은 참골뱅이가 유일했다.

 

그런데 요즘은 참골뱅이와 백골뱅이를 구분하지 않고 팔고 있다. 참골뱅이와 백골뱅이는 실제로 보면 바로 구분할 수 있지만, 글로써 설명은 어정쩡하다. 다만, 참골뱅이는 백골뱅이보다 좀더 밝은 노랑이미지가 있으며 입구부터 뿌리까지 전체 색깔이 같은 색이다. 백골뱅이는 참골뱅이와 비슷하지만, 뿌리부분은 백색에 검은 흔적을 보이는 탈색된 색깔이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골뱅이는 막힌 것을 풀고 탁한 것을 정리하며 위로 치우친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는 성질을 가진다. 특히 간과 비의 흐름을 함께 조정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작용의 근원을 이해하려면 골뱅이의 먹이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골뱅이는 이 이끼를 먹는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한 번 더 응축한다.

게다가 산란을 앞둔 이 시기에는 그 응축이 가장 강해진다.

 

▲ 골뱅이 숙회(출처 크라우드픽)

 

골뱅이와 소라는 바다이끼를 먹고 자란다. 바다이끼는 바닷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며 외부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원초적인 생명체다. 끊임없이 물을 받아들이고 걸러내며 다시 살아가는 구조 속에서 바다의 에너지를 응축해 낸다. 이러한 존재는 한의학적으로 보면 ‘근원적인 생명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품은 형태다.

 

결국 골뱅이를 먹는다는 것은 바다이끼에서 시작된 생명력이 산란을 앞두고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한 번 더 걸러 받아들이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창조인자’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 창조인자는 단순한 영양을 넘어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힘이다.

 

현대 영양학적으로도 이 현상은 일정 부분 설명된다. 골뱅이에는 타우린, 글루탐산, 이노신산이 풍부하다. 타우린은 간 대사를 돕고 알코올 분해를 촉진하며,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은 뇌의 각성도를 높인다. 특히 산란기를 앞둔 시기에는 이러한 성분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성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차이가 있다. 같은 성분을 가진 음식이라도 이 시기의 골뱅이에서 느껴지는 ‘맑아짐’은 다르게 다가온다.

 

소라와 전복은 골뱅이와 같은 흐름을 가지면서도 보다 단단하고 응축된 기운을 가진다. 정체된 것을 깨고 흐르게 하는 힘이 강하다. 전복은 깊은 바다에서 자라 기운을 보하고 안정시키는 방향에 가깝다. 따라서 자연산 전복의 아쉬움을 달래며 자연산 참골뱅이를 찾아보게 된다.

 

이들을 함께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막힌 것을 풀고, 정체된 것을 흘려보내며, 몸을 맑고 가볍게 만드는 방향이다.

 

이 조개류를 먹는 방식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있다. ‘숙회’다. 강한 양념 없이 짧게 삶아 본래의 성질을 해치지 않는 조리법이다. 불필요한 자극을 더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열을 가해 몸이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이 방식은 단순한 담백함을 넘어 몸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고동류는 반드시 침샘을 제거해야 한다. 일부 종에서는 독성 물질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이 더워지기 전, 몸이 한 번 더 무거워지는 이때는 무언가를 더 채우기보다 먼저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리한 뒤에 생명력이 가장 응축된 시기의 음식을 선택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바다이끼의 생명력을 머금고, 산란을 앞두고 가장 충실해진 골뱅이 한 점은 그 시작으로 충분하다.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