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에 있는 세종의 둘째따님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1477)와 남편 안맹담(安孟聃, 1415~1462) 무덤이 단아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이곳은 1982년 11월 13일 시도유형문화재 50호(도봉구)로 지정된 곳이지요. 집현전 학자였던 정인지가 비문을 쓰고 공주의 넷째아들인 안빈세가 글씨를 썼다고 전해지는 '양효 안공 신도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비석 위에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받든 섬세한 모양이 새겨진 이수를 모두 갖춰 조선 시대 신도비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보기 드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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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는 세종 임금의 8남 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는데 언니 정소공주가 일찍 죽는 바람에 세종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랐습니다. 매우 총명하여 훈민정음 창제 때에 세종을 크게 도왔다고 알려졌습니다. 출가 뒤에도 공주의 네 아들 이름을 세종이 손수 지어줄 정도로 아버지 세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공주의 둘째아들이 태어났을 때 닭이 뽕나무 위에서 울었다 해서 상계(桑雞)라고 지어주었지요.
또한 여러 대군이 풀지 못한 사투리 문제를 곧 풀어내어 큰 상을 받았다고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에 전해 내려옵니다.
공주는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안맹담(安孟聃)과 혼인하여 궐 밖에 살면서도 아버지 일이라면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무언가 만들기 좋아하던 세종이 발목에 조그만 칼심이 박혀 의원들마저 당황해할 때 정의공주가 자석으로 칼심조각을 빼낸 뒤 술 찌개미로 붓기를 가라앉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부부금실과 불심(佛心)도 깊어 남편 안맹담이 죽자 그의 명복을 빌고자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지었는데 이 책은 보물 96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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