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에는 '날틀'이 활약했다고 합니다. 날틀은 한자말로 비거(飛車)라고 하여 하늘을 나는 차, 요즘말로 비행기 같은 것입니다. 일본 쪽 역사서인 ≪왜사기(倭史記)≫에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썼는데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비거에 대한 국내 기록은 18세기 후반에 쓴 신경준의 문집 ≪여암전서(旅菴全書)≫에도 있습니다. ≪여암전서≫의 <책차제(策車制)>란 글을 보면, "임진왜란 때 영남 진주성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정평구는 평소의 재간을 이용하여 만든 비거를 타고 포위당한 성 안에 날아 들어가, 30리 성 밖까지 친지를 태우고 피난시켰다고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이규경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전주부인(全州府人) 김시양(金時讓)에게 들은 말을 기록해놓고 있지요. 내용을 보면 "충청도 노성(魯城) 지방에 사는 윤달규(尹達圭)라는 사람이 비거를 창안하여 이에 기록하여두었다. 이러한 비거는 날개를 떨치고 먼지를 내면서 하늘로 올라가 상하사방을 여기저기 마음대로 거침없이 날아다니니 상쾌한 감은 비길 바 없다. ……물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헤엄치는 것처럼 또한 자벌레나비처럼 굽혔다 폈다 하는 것처럼 하여 바람을 내면서 날개가 저절로 떠올라가니 잠깐 동안에 천 리를 날아다니는 기세를 발휘하여 십여 일의 시간을 단축하게 된다. 이것은 큰 붕새가 단숨에 삼천리를 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비거는 정확한 모양이나 어떤 쓰임새였는지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지요. 당시 비거는 포위된 진주성이 외부와 연락할 수 있게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해일처럼 밀려오는 10만 왜적과 맞서는 진주성 사람들에게 날틀은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또 이것이 비행기처럼 날았다면 라이트 형제를 앞선 세계 최초의 발명일 것이고요. 일본 쪽 역사서에도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진주성엔 분명히 백성의 희망, 날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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