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24- 덖다

튼씩이 2019. 4. 19. 20:44

차(茶)는 일반적으로 채다(採茶: 찻잎을 땀) → 변다(辯茶: 찻잎을 고름) → 살청(殺靑:찻잎을 덖음) → 유념(柔捻: 찻잎을 부드럽게 비벼줌) → 건조(乾燥: 찻잎을 말림)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찻잎을 딸 때, 최상의 상태는 '1창 2기'라고 한다. '1창 2기'는 창 하나에 깃발 두 개라는 뜻인데, 창(槍)은 새로 나온 뽀족한 싹이 말려서 창처럼 생긴 것이고, 기(旗)는 창보다 먼저 나와 잎이 다 펴지지 않고 조금 오그라들어 있어서 깃발같이 생긴 여린 잎이다.


살청은 찻잎의 산화를 막다 색깔과 성분을 그대로 유지하되 수분을 적당히 제거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차 맛은 거의 살청 과정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살청는 글자 그대로 '푸르름(靑)을 죽이는(殺)' 일이다(사실 찻잎의 푸르름이 사라지는 것은 대부분 살청이 아니라 건조 과정을 통해서다). 그런데 차는 살청을 거쳐 불멸의 향기를 얻지만, 사람은 '죽은(殺) 푸르름(靑春)' 대신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일까. 내 청춘이 그렇게 뜨겁고 가혹했던 것은 나를 덖어서 무엇인가를 끌어내려는 어떤 커다란 손의 존재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단언컨대 그 커다란 손의 기대는 헛되고 헛되다.


살청은 덜 익은 청보리를 찧어서 쑨 죽이나 대나무를 불에 쬐어 대나무의 푸른빛을 없애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후자는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업적'이라고 할 때의 청사와 관련이 있다. 청사는 '역사상의 기록'을 뜻하는데, 종이가 등장하기 전, 푸른 대나무 껍질을 살청해 거기에 사실(史實)을 기록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래서 역사책(史書), 서적 기록 같은 것들을 다른 말로는 살청이라고 한다.


유념의 목적은 덖은 찻잎을 문질러 줌으로써 찻잎의 세포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야 차를 우릴 때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온다고 한다.


덖다 (명) 물기가 조금 있는 고기나 약재, 곡식 따위를 물을 더하지 않고 타지 않을 정도로 볶아서 익히다.


쓰임의 예 - 양배추, 양파, 고추, 감자, 빨간 무, 부추, 송이버섯, 생선묵 따위를 익힌 쇠고기와 함께 자글자글 덖고 …. (김원우의 소설 <짐승의 시간>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살청 - 덜 익은 청보리를 찧어서 쑨 죽. 대나무를 불에 쬐어 대나무의 푸른빛을 없애는 일. 역사책(史書), 서적, 기록 같은 것들을 달리 이르는 말.


'지난 게시판 > 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카테고리의 다른 글

026 - 두멍솥  (0) 2019.04.21
025 - 동이  (0) 2019.04.20
023 - 절임  (0) 2019.04.14
022 - 무청  (0) 2019.04.13
021 - 진잎  (0) 2019.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