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43 – 뾰루지

튼씩이 2019. 5. 17. 08:12

괴롭거나 귀찮은 일에서 간신히 벗어났을 때 ‘학을 뗐다’고 한다. ‘학을 떼다’는 ‘학질을 떼다’에서 ‘질’을 뗀 말이다. 그만큼 학질이 귀찮고 괴롭고 잘 떨어지지 않는 병이라는 얘기가 된다. 학질, 즉 말라리아는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오한과 고열을 일으키는 병으로 토박이말로는 고금이라고 한다. 고금에는 하루거리와 이틀거리가 있다. 하루거리는 하루씩 걸러서, 그러니까 이틀에 한 번씩 앓는 고금이고, 당고금이라고도 하는 이틀거리는 사흘에 한 번 발작하는 것으로, 그 발작하는 날을 직날이라고 한다. 며느리고금은 매일이 직날인 지독한 고금이다. 미운 며느리 고금이나 앓으라고, 그것도 매일같이 앓으라고 어느 못된 시어미가 며느리를 고금에 갖다 붙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금만큼 괴롭고 귀찮은 것은 물론 더럽기까지 한 것이 부스럼이다. ‘이명래 고약’을 떠올리게 하는 부스럼은 지금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옛날에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무서운 병이었다. 그래서 부럼이라는 풍속이 생겨났을 것이다. 대보름날 까먹는 밤, 잣, 호두, 땅콩 같은 것을 부럼이라고 하는데, 이날 새벽에 부럼을 까먹고 깍지를 버리면 그 한 해 동안은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부럼은 부스럼의 준말이다. 비록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부스럼을 예방하기 위한 풍속이 생겨야 했을 만큼 부스럼의 위력은 대단했던 것이다.


부스럼은 피부에 나는 종기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목 뒤 머리털이 난 가장자리에 생기는 부스럼은 발찌라고 하고, 풍열 때문에 볼 아래에 생기는 종기는 볼거리, 턱 아래에 생기는 것은 턱거리라고 한다. 손가락 끝에 나는 몹시 아픈 종기는 생인손, 발가락 끝에 나는 것은 생인발이다. 다대는 부스럼 딱지, 붉은발은 부스럼의 언저리에서 나타나는 충혈된 핏발, 곱은 부스럼이나 종기에 끼는 골마지같이 생긴 것을 가리킨다. 골마지는 간장이나 술 같은 물기 많은 식료품에 생기는 곰팡이 비슷한 물질이다.



뾰루지 (명) 뾰족하게 부어오른 작은 부스럼. =뾰두라지.


쓰임의 예 – 전장에서는 인간의 죽음이 뾰루지만큼도 심각하지가 못하다.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발찌 – 목 뒤 머리털이 난 가장자리에 생기는 부스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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