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의 이삭이 패어 나오는 것을 패암이라고 한다. 몰랐던 사실인데,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을 쓸 때 컴퓨터 자판의 ‘한/영’ 키를 영문으로 해 놓고 한글로 패암을 치면 ‘vodka(보드카)’가 된다. 아니 ‘한/영’ 키를 한글로 해 놓더라도 패암을 치면 저절로 영문 단어 ‘vodka’로 바뀐다. 왜 그럴까. 보드카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곡식으로 만드는 술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한글과컴퓨터)사가 보드카 회사와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이삭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만종(晩鐘)>과 함께 밀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림 <이삭줍기>가 떠오른다. 이때의 이삭은 앞에 소개한 뜻풀이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삭이다. 그래서 신문을 보면 농구나 야구 같은 프로 스포츠 종목의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몇몇 대어나 유망주를 선발한 다음에 나머지 그만그만한 선수들 가운데 쓸만한 선수를 뽑는 일을 ‘이삭줍기’로 표현하고는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삭’에 지나지 않는 스스로를 견뎌야 하는 선수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마는.
모개 또는 모개미는 곡식의 이삭이 달린 부분을 가리키고, 이삭이 달린 줄기는 홰기라고 한다. 벼의 이삭은 그냥 벼이삭이지만, 깨의 이삭은 깻송이, 갈대의 이삭은 갈목이라고 한다. 갈목을 매어서 빗자루를 만들면 갈목비가 된다. 꽃 피기 전의 갈목, 그러니까 아직 피지 않은 갈꽃은 갈품이라고 한다. 새품은 억새의 꽃, 달품은 달풀의 꽃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아이들이 혼동하기 쉬운 것이 갈대와 억새다. 갈대는 바닷가나 강가 같은 습지에서 자라고, 억새는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것인데, 내 아들은 산에 가면 갈대를 꺾자고 하고, 갈대가 아니라 억새라고 가르쳐주면, 이번에는 바닷가에 가서 억새를 꺾자고 조른다. 문제는 내 아들이 나를 닮았다는 사실! 그래서 즐겁다.
이삭 (명) ① 벼, 보리 따위 곡식에서, 꽃이 피고 꽃대의 끝에 열매가 더부룩하게 많이 열리는 부분.
② 곡식이나 과일, 나물 따위를 거둘 때 흘렸거나 빠뜨린 낟알이나 과일, 나물을 이르는 말.
쓰임의 예 – 기슭에는 지난해에 뽑아 먹고 남은 무, 배추의 이삭들이 흩어져 있었다. (서정인의 소설 『붕어』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모개 – 곡식의 이삭이 달린 부분. =모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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