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160호) 모레 ‘백로’, 어머니 ‘포도지정’ 그리워

튼씩이 2019. 9. 6. 08:06

“꼬리가 긴 남은 더위도 차츰 물러가고 산의 양지쪽에는 제법 가을색이 깃들였으며, 높아진 하늘은 한없이 푸르기만 하다. 농가 초가집 지붕 위에는 빨간 고추가 군데군데 널려 있어 가을색을 더욱 짙게 해주고 있는가 하면 볏논에서는 어느새 ‘훠이 훠이’ 새를 날리는 소리가 한창” 위 글은 “秋色은 「고추」빛과 더불어 「白露」를 맞으니 殘暑도 멀어가”란 제목의 동아일보 1959년 9월 8일 치 기사 일부입니다.

 

모레 곧 9월 8일은 24절기의 열다섯째 <백로(白露)>지요. 백로는 “흰이슬”이란 뜻으로 이때쯤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는 뜻입니다. 백로부터는 그야말로 가을 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때입니다. 옛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습니다.

 

포도순절이 시작되는 ‘백로’, 어머니의 ‘포도지정’이 그리운 날(그림 이무성 작가)
▲ 포도순절이 시작되는 ‘백로’, 어머니의 ‘포도지정’이 그리운 날(그림 이무성 작가)

 

이때쯤 보내는 옛 편지 첫머리를 보면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백로에서 한가위까지를 <포도순절>이라 하지요. 또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 포도의 정)>을 잊었다고 하는데 이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습니다. “백로”, 어머니의 <포도지정>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