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한(三韓)의 원수를 갚았노라. 아무 할 말은 없다.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이는 대만을 방문한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며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히코(久邇宮邦彦王)를 처단한 조명하 의사가 순국 직전인 1928년 오늘(10월 10일) 남긴 말입니다.
조명하 의사는 일하던 오사카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상해 임시정부로 가던 중 대만을 거쳐 가게 됩니다. 이때 조 의사는 대만 주둔 일본군을 특별검열하기 위해 검열사 구니노미야 구니히코가 온다는 정보를 듣습니다. 1927년 5월 14일 마침내 구니노미야를 처단하기 위해 단도에 극약을 바른 다음 구니노미야를 태운 지붕 없는 차가 지나가자 의사는 단도를 빼내 들고 날쌔게 자동차 뒤쪽에 뛰어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단도를 구니노미야 목에 힘껏 던집니다. 구니노미야는 이때 단도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지만 단도에 발라진 독이 온몸에 퍼져 1929년 1월 27일 죽었습니다.
구니노미야 처단은 중국 침략을 앞두고 있던 일본에 대한 단호한 경고였지요. 조의사의 의거는 단독거사로 밝혀졌는데 조국 독립 의지가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마나 뼛속 깊이 맺혀 있는지를 알려준 단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조 의사의 주검은 1931년 4월 중순 고향인 황해도 송화 장천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6․25 한국전쟁 뒤 자손들이 월남한 뒤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장하였습니다. 정부는 조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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