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盡忠竭力, 충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 바침)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국욕(國辱)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허위는 관계(官界) 으뜸 충신이라 할 것이다.” 이는 안중근 의사가 허위 선생에 대해 평한 말입니다.
111년 전(1908년) 오늘은 허위 선생이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날이지요. 선생은 1904년 일제가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조인케 하여 한국침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하자 온 나라에 배일통문을 돌려 일제 침략상을 규탄했습니다. 선생은 배일통문에서 “도내 각 동지들에게 빨리 통고하여 옷을 찢어 깃발을 만들고, 호미와 갈구리를 부셔 칼을 만들고(…)우리들은 의군을 규합하여 순리에 쫓게 되니 하늘이 도울 것이다.”라고 절규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선생은 포천 등 경기도에서 의병을 모집, 수차례 일본군을 격파하였지요. 그리고 원수부 13도의병 군사장(軍師長)이 되어 의병 2,000명을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와 일본군과 대치, 격전을 벌였으나 패하였습니다. 그 뒤 매국노 이완용이 사람을 보내 내무대신 등의 관직으로 유인하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1908년 6월 일본 헌병대의 습격을 받아 경기도 포천에서 체포되었지요. 선생은 그 해 10월 사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의를 펴지 못하였는데 유언은 무엇에 쓰랴."며 도리어 옥리를 꾸짖고 순국하였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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