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220호) 손으로 두드리고 만지면서 만들던 메주

튼씩이 2019. 12. 2. 08:27

“속을 썩히는 / 저 향긋한 향 /

어머니, 아버지

가슴 속에 든 곰팡내 나는 / 퍼런 멍처럼

네모난 / 메주

한 / 덩이”

 

정순철 시인의 시 <메주>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은 24절기 가운데 ‘대설(大雪)’로 이즈음 우리 겨레는 메주 쓰기가 한창입니다. ‘콩으로 메주를 쒀도 곧이듣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아무리 당연한 사실을 말해도 믿을 수 없지요. 이 속담이 전해지던 우리 겨레에게 ‘콩으로 메주 쑤는 일’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 어느 집이건 논두렁에 심어두었던 콩을 갈무리하여 음력 10월부터 11월 무렵 메주를 쑵니다.



 

순창 ‘고추장마을’에 매단 메주


▲ 순창 ‘고추장마을’에 매단 메주

 

‘메주’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아보면 12세기에 펴낸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장왈밀저(醬曰蜜沮)’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메주입니다. 또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발해(渤海)의 명산물로서 책성(柵城)의 시(豉)를 들고 있는데 ‘시’는 한자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배염유숙(配鹽幽菽)’, 곧 콩을 소금과 함께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 ‘메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메주 쑬 때 메주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메주틀’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마을 뒷산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로 뚝딱뚝딱 만들었을 지극히 평범한 ‘메주틀’이지만 이제는 박물관 진열장에 모셔져 있지요. 어느 집이건 있었을 법한 메주틀은 국립민속박물관에 겨우 4점이 있을 뿐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메주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집에서만 메주틀이 필요했을 뿐 보통 집에서야 그저 쫀득한 콩덩이를 양손으로 잡고 도마 위에서 밑바닥이 평평하도록 두드리고 만지면서 메주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메주틀, 세로 36ㆍ높이 13.2ㆍ가로 36.3cm, 국립민속박물관


▲ 메주틀, 세로 36ㆍ높이 13.2ㆍ가로 36.3cm,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