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천년의 질문(3권) - 조정래

튼씩이 2020. 1. 11. 14:53




(1)


가로수들이 물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 허용된 땅은 반의반 평도 안 되는 나문 둘레의 저 네모난 땅이 전부예요. 저 손바닥만 한 작은 땅에 비가 올 때 물이 스며들면 얼마나 스며들겠어요. 저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뿌리발을 하고 살아가느라고 저 가로수들은 얼마나 목이 마르고, 허기지고, 힘겨울까 하는 생각이 가로수들을 볼 때 마다 꼭 떠오른다니까요.   - 13-

 

국민들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 <루소>

정치인에게 국민이란 정권을 잡기 위한 방편이고 구호일 뿐이다. <무명인>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인들에게 지배당한다. <플라톤>    - 2425-

 

인간은 세 겹의 노예다. 신을 만들어 종교의 노예가 되었고, 국가를 만들어 권력의 노예가 되었고, 돈을 만들어 황금의 노예가 되었다. 거기다가 네 번째로, 핸드폰을 만들어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었다.    - 33-

 

탐진치(貪嗔癡) - 욕심 부리지 말고, 화내지 말고,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붓다는 이 세 가지를 삼독(三毒)이라 이름 짓고, 자비만큼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았다.     - 272-

 

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사마천>    - 275-

 

인생사의 얻고 잃음이란 모래 한 주먹 쥔 손을 오무렸다 펴는 것과 같은 것이오. 손을 오무려도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손을 펴도 모래는 흘러내리는 거요. 다만 시간 차이가 좀 있을 뿐이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얻은 것을 그대로 이 세상에 두고 맨손으로 떠나게 되어 있소. 그러니 집착을 버리시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시오. 새 마음으로 다가올 날만 생각하시오. 그것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가 뜨고 지듯이,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런 걸음으로 다가올 날을 맞이하시오.    - 354-

 

 

(2)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나눌 인생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

책이란 갈고닦은 영혼의 결정체가 담긴 그릇이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의 하나는 남과 자기를 비교해가며 자꾸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뿐이다.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다.

인생이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 301302-

 

글 쓰는 일은 언어와의 싸움입니다. 첫째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하고, 둘째 단어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해야 하고, 셋째 단어의 활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본적인 행위의 첫 번째가 국어사전을 부지런히 찾는 것이고, 두 번째가 좋은 책들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그 원시적인 방법의 끈질긴 실천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성실을 잃지 않으려고 제 자신에게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고 있습니다.    - 379-

 

    

(3)


국민이 감시 감독을 소홀히 하는 직무유기를 저지르는 것은 모든 권력자들에게 맘대로 직무 유기를 저지르라고 기회를 주고 허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국민이 저지르는 가장 큰 어리석음과 망상은 정치인들이 자기네가 원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리라고 믿고 방심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심장이 뛰듯이 살아 움직이지 않고서는 그 사회와 국가는 병들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는 시들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은 절대 불변의 사실입니다.     - 215-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름 값, 통신비가 너무 많이 나간다고 얘기했고, 카드 수수료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건강보험 제도하에서도 약값이 너무 나간다, 대출 이자 갚다가 끝난다 등등 문제점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5대 품목에 대한 독과점 폭리의 거품이 빠진다면 모든 가정마다 매달 5060만 원의 부담이 줄어들고, 최소 20조의 가계 부담이 덜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 277-

 

우리 손지가 공부허고 있으믄 내가 말해.

아가공부 많이 헌 것들이 다 도둑놈 되드라.

맴 공부 해야 쓴다. 사람 공부 해야 쓴다 그러코 말해.

착실허니 살고, 넘 속이지 말고

넘의 것 돌라묵을라 허지 말고

니 심으로 땀 흘림서 벌어묵어라와.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야 써.

사람은 속 짚은 것으로 허는 짓이 달라지는 벱잉께.

지 맴을 잘 지켜야제

돈 지킬라고 애쓰덜 말아라 잉.

아이고, 이쁜 내 강아지!!    - 382쪽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천 년에 거쳐 하나의 거대한 집단, 즉 국가에 소속되어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되물었을 법한 질문인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이고도 치열한 질문에 대한 뜨거운 응답을 던진다. 국가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 동서양의 연구서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국가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직접 만나 심층적으로 취재함으로써 21세기 국가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했다.

 

소설은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본과 권력에 휘말려 욕망을 키워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월급 통장에 매달 ‘0을 찍으며 사건 취재에 고군분투하는 기자의 노력,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동료들이 낙엽 떨어지듯 일자리를 잃자 자신이 낳은 두 아이의 눈빛까지 무서워졌다는 만년 시간강사의 고뇌가 술회되는 동시에, 비자금 장부의 행방을 추적하는 재벌 그룹 구성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그려진다. ‘개천에서 승천한 용인 서울대 출신 수재는 재벌가 사위로 발탁된 후 온몸을 다 바쳐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결국 죽어도 진골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비자금 장부를 훔쳐 잠적하고, 재벌의 유화정책으로 굳게 입 닫은 언론에 좌절한 기자와 그를 회유하기 위한 재벌 정보원의 전방위적 시도가 긴박하게 연출된다.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혈안인 국회의원과 사업가, 변호사 등의 아귀다툼은 치열하기만 하다.

 

작가는 수십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생생한 캐릭터를 부여해 정경유착의 실태와 비정규직 문제, 급격한 사회 양극화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드러낸다. “입법·사법·행정이라는 국가권력에 재벌·언론이라는 사회 권력이 야합하여 온갖 비리를 조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는 불법 비자금, 전관예우 문제 등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는 권력 범죄의 실태를 소설로 형상화함으로써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국민 소득의 절반을 독식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국권상실, 동족상잔, 군부독재의 뼈아픈 역사를 건너온 국민의 애환을 소설에 담아내며 그동안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반드시 피어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조정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도 한 걸음 내디딜 변화의 길을 그려냈다. 나와 내 이웃을 위한 작은 실천만이 거대 권력의 독재를 막을 수 있으며, 우리 모두 함께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머지않은 때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믿음은 작가가 오늘도 원고지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게 해주는 밑거름이다. 자본과 권력에 빼앗긴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찾는 일이 의외로 간단하고 쉬운 일임을 일깨워주는 천년의 질문, 무거운 현실에서도 국민 스스로 깨어나야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국민 깨우기의 자명종이 될 것이다.   - YES24 출판사 리뷰 중 -



책을 읽으면서 웃겼던 사실 중 하나는, 김태범이 성화그룹에 잡혀 빈털터리가 되어 쫓겨난 후 재기를 위해 다시 다른 대기업에 들어가 앞뒤 안 돌아보고 일할 때, 김태범이 성공해 성화그룹에 복수하게 되기를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응원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말이 복수이지 자신이 선택해 들어간 회사에서 비록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대가는 비록 못 받았지만, 대기업 회장 일가족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혜택을 받고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자신도 신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몸담았던 회사를 배신하였고, 그 배신에 대한 복수로 일반 서민은 꿈도 꾸지 못 할 돈을 만지면서 또 다른 대기업 회장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자신에 대한 변명은 구차하기만 할 따름이다.

 

열혈기자 장우진과 민변 소속 최민혜 변호사를 보면서 그들은 당연히 그런 삶을 살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그들이 가진 직업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들과 같이 사는 게 평범한 삶도 아니고 그런 삶은 사는 사람이 많지도 않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책에서라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있어 다행스럽고 현실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에 중간에 그만 접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소설에서라도 우리나라의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3권까지 내리 읽었는데, 안타깝게도 속 시원한 결론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암흑이 아닌 조그마한 빛이라도 기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국민들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

정치인에게 국민이란 정권을 잡기 위한 방편이고 구호일 뿐이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인들에게 지배당한다.


1권 2425쪽에 있는 글이다.

책을 덮고 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는데, 저런 놈들에게 나라를 맡겨 놓고 무관심하는게 맞나 싶다가도, 너희들끼리 잘 해 먹어라하고 모른척하고 사는게 편하다 싶을 때가 많다. 먹고 살기 힘들 때, 회사일에 지칠 때, 내 앞가림도 힘든데 굳이 정치에 관심가져야 하나 생각했다가도, 그래도 내 돈으로 월급 주며 내가 뽑은 사람들인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게 맞는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