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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님을 기다리며 했던 매향의식과 매향비

튼씩이 2015. 11. 6. 14:45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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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0. 28



고려말, 조선초에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탈에 고통을 받던 백성이나 스님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시기를 비는 뜻이었지요. 묻은 향나무가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서해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이’ 스스로 물위로 떠오른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매향의식을 한 뒤엔 그곳에 매향비(埋香碑)를 세웠습니다.

그때 세웠던 매향비는 곳곳에 남아 있는데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의 보물 제614호 “매향비”도 있지요. 비는 거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써서 비문을 새겨 놓았는데, 표면의 굴곡이 심합니다. 글자 크기가 같지 않고 가로세로도 잘 맞지 않으며, 글자 수 또한 각 행마다 같지 않지요. 다만 글자체에 예스러움이 담겨 있어 당시 지방의 글씨체를 엿볼 수 있습니다.

판독된 내용에 따르면, 고려 후기 사회가 혼란하던 때에 불교 스님들을 중심으로 4,100여 명이 계(契)를 조직하여, 임금의 만수무강, 나라의 부강, 백성의 평안 등을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매향의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비문은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세워졌는데 건립목적과 세운 연대가 확실한 것으로, 잊힌 우리의 옛 민속을 알려주고 고려 후기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지요. 민중들이 자신을 구원해주러 오실 미륵님을 기다리며 묻었던 향나무가 수백 년이 지난 오늘에 최고급 향으로 알려진 침향(沈香)이 된 것은 어쩌면 이 백성의 염원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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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야기 321>

일본에서 처음으로 화엄종을 설법한 신라 심상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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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뛰노는 절 천년고찰 동대사에 놀러가는 이웃들
오사카 나라 교토 묶어 3박4일 무얼 보고 올까?

동대사를 세운 백제 행기스님
초대 주지 백제 양변 스님

여기서 처음으로 일본 화엄종 강설을 한
신라 심상대덕
...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세월 속
고승들의 발자취는 지워지고
지금 사람들 단풍든 고찰에
뛰어노는 사슴 쫓아 사진 찍기 바쁘다“

정말 그렇다. 동대사는 나라시대 일본 최고의 절이자 현재도 천년 고찰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오사카, 교토, 나라 이렇게 3도시를 엮어 3박 4일 코스로 떠나는 여행 상품이 즐비하다. 오사카만 해도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다 보니 바로 이웃집 드나들듯이 훌쩍 다녀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동대사는 나라공원 안에 있어 사슴이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관광객이 다가서면 사슴이 달려와서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부려 인기 만점의 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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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는 나라현 나라시 조우시쵸 (奈良市司町)에 있는 천년 고찰로 1300여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도 일본 불교의 원형을 지금껏 고이 간직하고 있는 절이다. 일본 불교의 뿌리이자 남도 6종의 꽃을 피웠던 나라를 대표하는 절 동대사는 일본 화엄종의 총본산으로 대불전에는 국보에 빛나는 비로자나불상이 모셔져 있어 지금도 참배객들이 줄을 서는 곳이다.

동대사 창건 시기는 성무왕 치세로 그가 24살(724년)의 나이로 즉위하게 되는데 즉위 3년 뒤인 727년 고대하던 황태자가 태어나지만 만 1살이 채 안되어 요절하는 불행과 맞닥트린다. 이에 성무왕과 왕비 광명왕후는 황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공양을 하게 되며 이곳이 동대사의 전신인 금종사이다.

여기까지야 일본 사서에 내오는 평범한 동대사 역사지만 우리에게 동대사는 아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절이다. 이 절을 세운 사람은 백제계 행기 스님이며 초대 주지는 역시 백제 출신 양변 스님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신라 심상대덕이 화엄종의 최초 강설자였다는 기록이 우리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한다.

일본의 최초 화엄종 강설자인 신라의 심상대덕에 관한 일본의 문헌으로는 《삼국불법전통연기제2(三國佛法傅通緣起第二)》, 《동대사요록제1, 제5 (東大寺要錄第一, 第五)》, 《화엄종요의(華嚴宗要義)》 등이 있으며 《정창원 사경소(正倉院 寫經所)》에도 심상스님의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천평12년 경신 10월 8일 금종사(동대사 전신)에 성무왕을 위해 심상대덕을 초청했다. 첫 화엄경 강설이었다. 이로써 천평 16년 세차 갑신에 천황이 삼보에 귀의하였다.” 천평 12년은 740년으로 이는 일본의 제45대 성무왕이 신라 심상대덕의 화엄종 강연을 듣고 불법에 귀의했다는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에 세워진 나라의 동대사는 그야말로 고대 한국의 고승들이 활약하던 곳으로 단순한 관광의 이미지로만 둘러볼 곳이 아니다.

*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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