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자로 쓴 현판들을 보면 모두 글씨가 오른쪽부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한자의 경우 오른쪽부터 쓰기 때문이지요. 그런 예로 경복궁 근정전과 창덕궁 인정전 현판도 역시 오른쪽부터 썼습니다. 그런데 한양 성곽 4대문의 하나인 숙정문과 4소문의 하나인 혜화문은 왼쪽부터 썼습니다. 한양 성곽나들이를 하면서 꼼꼼히 살펴본 이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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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현판임에도 왼쪽부터 글씨를 쓴 숙정문과 혜화문 현판
1396년 완공된 숙정문이나 혜화문의 현판은 당연히 오른쪽부터 썼을 겁니다. 원래 문화재 복원은 원형대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숙정문은 1976년, 혜화문은 1992년 복원하면서 현판도 새로 만들어 달았는데 그때 복원의 주체들과 현판을 만들었던 장인들이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춰 왼쪽부터 쓰기로 했다고 전합니다.
한편, 광화문 현판은 상징성을 고려해서 한글로 달자며 한글단체가 강력히 주장했는데도, 문화재청은 굳이 원형대로를 고집하며 한자로 써 달았습니다. 지난 1월 13일부터 14일까지 한글문화연대의 의뢰를 받아 리얼미터가 전국 19살 이상 1,0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0.6%가 ‘한국을 대표하는 곳이니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에 견주어 ‘한자현판이 좋다’라고 답한 사람은 29.7%였다고 하지요. ‘한글현판과 한자현판을 앞뒤로 달자’라고 응답한 20.2%까지 더한다면 한글현판 찬성률은 무려 60.8%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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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당한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예시 / 디자인_강병인, 사진_김정우
사실 새로 단 한자현판도 원형복원이 아니라 고종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 원본 필름을 스캔하여 이것을 토대로 테두리를 그린 다음 그 안을 메꿔서 글씨를 만든 ‘쌍구모본(雙鉤模本)’ 방식일 뿐이라고 진용옥 경희대 명예교수는 말합니다. 문화재청은 국민을 속여가며 원형복원이 아닌 한자현판을 고집하고 있는데 문화재청은 진정 나라와 국민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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