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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궁궐 약방에서 쓰던 약상자 보셨나요?

튼씩이 2015. 11. 6. 14:50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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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1. 3.



조선시대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어의로서 내의원에서 일했습니다. 내의원(內醫院)은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 쓰이던 약을 조제하던 관청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이 내의원과 같은 일을 하던 곳으로 상약국(尙藥局)이 있었습니다. 충북 음성 <한독의약박물관>에 가면 이 상약국에서 쓰던 보물 제646호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이 있지요.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靑磁 象嵌‘尙藥局’銘 陰刻雲龍文 盒]은 한 자 이름으로 보통 “합(盒)”이라 부르며 뚜껑 달린 원통형의 그릇으로, 높이 9.6㎝, 아가리 지름 7.5㎝, 밑지름 6.0㎝의 크기입니다. 고려청자에는 이런 뚜껑그릇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키가 작고 납작한 형태와 키가 크고 원통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뚜껑그릇은 키가 크고 원통형으로 단순한 모양입니다. 그릇 아래쪽과 뚜껑 위쪽 모서리를 비스듬히 깍아내 매우 부드럽고 듬직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요. 뚜껑 위의 둥근 평면에는 정교한 솜씨로 구름과 학 모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 뚜껑그릇에서 주목되는 것은 몸체 윗부분과 뚜껑 아랫부분에 흰색으로 상감 처리한 “상약국(尙藥局)”이라는 글자인데, 이런 종류의 뚜껑그릇은 매우 드뭅니다. “상약국”이 고려시대에 의약을 담당하던 관청이기에 이 뚜껑그릇은 약을 담는 쓰임새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요. “상약국”은 고려 목종 때(재위 997∼1009)부터 충선왕 때(재위 1308∼1313)까지 있었기에 이 뚜껑그릇은 그 기간에 만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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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36>

“장안사” 절이 등장하는 <금강산타령>



지난주에는 1930년대 일제의 찬탈이 극도에 달해 있을 때,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였던 <조선가무연구회(朝鮮歌舞硏究會)>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연구회는 1930년대 중반, 최경식이나 박춘재 등 경-서도 음악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로 이름 그대로 경서도 지방의 가무(歌舞)를 연구하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는 점, 당시 활동했던 회원들은 재담의 이순일, 양주 산대놀이의 정한규와 이건식, 12잡가의 대 명창이었던 원범산, 선소리 산타령의 명창들로 과천 모갑이 소완준, 왕십리패의 이명길이나 탁복만, 이명산, 김태봉, 고전무용의 이칠성, 잡가와 민요의 김태운이나 엄태영, 유태환 등의 이름이 보인다는 점을 얘기했다.

특히 조선권번의 잡가선생으로 <금강산타령>이나 <풍등가>를 작사 작곡한 최정식도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금강산타령>은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는 노래로 경기민요를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노래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이 노래는 모두 7절로 이루어진 것인데, 1~6절 까지는 6박의 도드리 장단으로 부르고, 마지막 7절은 노랫가락으로 맺는 형식이며 그 시작은 “천하명산 어드메뇨, 천하명산 구경갈제, 동해끼고 솟은 산이 일만이천 봉우리가 구름같이 벌렸으니 금강산이 분명쿠나.”로 되어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최정식은 최경식 사범의 큰 제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최근에 작고한 여류 명창 묵계월을 가르친 사범이며 그 뒤로는 안비취도 가르친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사 작곡한 <금강산 타령>은 처음에는 낮게 시작하여 점점 상행선율을 그려 나가다가 <일만이천>에서는 최고조에 달하고 다시 하행하는 형식의 노래이다. 또한 장단은 도드리장단의 6박+6박, 도합 12박이 짝을 이루는 장단으로 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12박 중에서 가사를 반드시 붙이는 박과 붙이지 않는 박이 거의 규칙적으로 나오고 있어서 여러 명이 합창으로 부르기 안성맞춤의 곡인 것이다.

현재의 경기명창들 뿐 아니라, 초보자들도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는 점에서 그의 음악성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독자 여러분들도 음반이 아닌 명창이 실제 부르는 노래로 <금강산 타령>을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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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이 아름다운 금강산은 기암이나 괴석과 함께 각종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봄에 부르는 산 이름이고, 여름에는 맑은 물과 푸른 나무가 울창하여 봉래산,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풍악, 겨울에는 흰 눈이 쌓여 백골이 된다고 해서 개골산(皆骨山)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에는 무려 40여개의 절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절들은 장안사(長安寺)와 표훈사(表訓寺), 유점사(楡岾寺), 신계사(神溪寺) 등을 금강의 4대 절로 꼽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유점사>를 금강 으뜸 절로 꼽고 있다. 아마도 그 까닭은 31본산의 하나이며 53불(佛)로 유명하다는 점과 이 절에 인목대비의 친필과 같은 보물이 있다는 점, 그보다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높은 제자로 만인의 숭앙을 받았던 사명당(四溟堂)이 머물며 가르침을 주던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금강산을 노래하는 <금강산타령>과 함께 최정식이 작사 작곡한 또 다른 노래 <풍등가>라는 노래도 있어서 잠시 소개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 노래는 <풍등가(登歌)>라는 곡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풍년이 들어 나라를 크게 일으켰으면 하는 취지로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일종의 격양가(擊壤歌, 풍년 들어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노래)라 하겠다.

노래 속에 나오는 가사를 보면 논농사에 뿌리는 벼 종류의 이름, 밭농사의 곡식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지금은 잊혀진 용어들이 노랫말로 나오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래의 취지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부국을 노래하고 있어서 놀자판 가사와는 달리, 매우 건실한 내용이다. 민요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놀이요와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농민들의 노고와 땀의 결정으로 가을에 추수하여 태산같은 노적가리를 앞뒤 뜰에 쌓아 두고 새 곡식으로 술을 빚고 떡도 하여 노고를 잊고 흥겹게 노는 모습은 마치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 사실적이다. 우리의 민요들이 한문으로 된 노랫말이 많아 가사의 뜻을 알기 어려운데 이 노래는 쉽게 이해가 되는 편이다. 가락은 경기민요의 대표적인 창부타령조로 부르다가 끝 부분은 노래가락조로 맺고 있다. 앞머리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국태민안 시화연풍 연년이 돌아든다.
황무지 빈터를 개간하여 농업보국에 증산하세.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니
우리 인생 먹고 삶이 농사밖에 또 있는가,
농사 한 철을 지어보자. 물이 층층 수답(水畓)이요
물이 말라 건답이라. 어떤 볍씨를 뿌렸더냐.
정전앞에 생모찰, 아롱대롱이 까투리찰, 꺽꺽 푸드득 쟁기찰이요
이팔청춘 소년벼요 나이많아 노인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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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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