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사라진 말들, ‘안내양’, ‘간호원’,그리고 ‘장애우’

튼씩이 2020. 11. 1. 11:05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지칭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있다. 이들 단어는 중립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종종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언중의 인식이나 평가를 반영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어느 집단이나 계층을 지칭하는 단어들 중 사용상의 변화가 크게 나타난 단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려 한다.

 

 

사라진 ‘안내양’

 

▲<그림 1> ‘안내양, 안내인, 안내원’의 연도별 상대 빈도(동아일보 말뭉치)

 

 

<그림 1>에서 보듯이 ‘안내양(案內孃)’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 높은 빈도로 사용되다가 이후 급격히 사용이 감소되었다. ‘안내양’은 ‘안내’와 관련된 다른 말들인 ‘안내인(案內人)’ 또는 ‘안내원(案內員)’과 비슷한 말일 것 같지만 ‘버스의 여차장’을 지칭하는 매우 특수한 사용역*을 가진 단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우리말샘』에는 ‘안내양’이 ‘손님을 안내하는 젊은 여성’의 의미도 갖는 것으로 뜻풀이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런 용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1987년, 승객이 직접 돈을 내고 버스에 타는 ‘자율버스제’가 도입되었다. 그 결과 버스에서 차비를 걷던 여성 차장이 사라지게 되고 ‘안내양’도 그와 운명을 같이 한 것이다. 이제 ‘안내양’은 복고풍의 영화나 드라마에나 등장하는 추억의 인물이 되어 버렸다. 부수적인 현상이지만 ‘안내원’과 ‘안내인’의 빈도도 2000년대 이래로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 사람의 안내보다는 손 안의 ‘만능 안내인’에게서 모든 정보를 얻기 때문은 아닐까?

 

*사용역: 화자가 특정한 상황에 따라 언어를 적절히 바꾸어 사용하는 것 또는 그러한 영역(『우리말샘』)

 

 

‘간호부’에서 ‘간호사’까지

앞서 살펴본 ‘안내양’은 ‘안내원, 안내인’과 의미의 일부를 공유하기는 했지만 지칭하는 대상은 전혀 달랐다. 그러나 지금부터 살펴볼 ‘간호부, 간호원, 간호사’는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한 다른 명칭이다. 이 단어들은 시대에 따라 흥미로운 추세를 보인다.

 

 

▲<그림 2> ‘간호부, 간호원, 간호사’의 사용 빈도

 

 

<그림 2>에 따르면 1950년대 이전에는 ‘간호부(看護婦)’가 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간호’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91년부터이다. ‘의사의 진료를 돕고 환자를 돌보는 일을 맡는 사람’을 이때부터 ‘간호부’라 부른 것이다. 그런데 1950년대 초부터 ‘간호원(看護員)’이 압도적인 사용상의 우위를 보이면서 ‘간호부’와 ‘간호원’의 위상이 전도된다.

 

왜 그랬을까? 1951년 9월 25일, 『국민의료법』이 마련되면서 간호 일을 맡는 직책에 대한 공식적인 명칭이 ‘간호원’으로 규정된 것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인다. 그러다가 1990년대 즈음에는 ‘간호사(看護師)’가 등장하면서 ‘간호원’과 다시 자리바꿈을 한다.

 

이번에는 1987년 『국민의료법』이 개정되면서 기존의 ‘간호원’ 명칭이 ‘간호사’로 변경된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명칭의 변화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과거 ‘간호부’는 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간호원’은 간호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간호원’이라는 명칭은 직업의 전문성에 대한 인정을 나타낸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후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도 생겼다. 이렇듯 학문적 입지도 넓어지고 전문성도 심화되다 보니 그에 적절한 말을 찾은 것이 ‘간호사’인 것이다. 우리는 직업을 나타내는 말 하나도 이렇게 조심스레 선택하여 쓰고 있다.

 

 

‘장애우’보다는 ‘장애인’으로

마지막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자.

 

 

▲<그림 3> ‘장애자, 장애인, 장애우’의 사용 빈도

 

 

<그림 3>을 보면 1990년대 이전까지는 ‘장애자(障礙者)’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 무렵부터는 ‘장애인(障礙人)’의 사용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낮은 빈도지만 ‘장애우(障礙友)’라는 말도 ‘장애자, 장애인’과 함께 쓰이고 있다. 이 ‘장애우’는 장애인에 대한 친근함을 나타내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쓴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장애우’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을까? ‘장애우’가 나쁜 표현은 아니지만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장애인은 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의존적 존재라는 편견을 조장한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어떤 집단이나 사회계층을 나타내는 말은 모든 인칭에서 두루 쓰일 수 있어야 하지만 ‘장애우’는 자기 자신에게는 쓸 수 없는 말이라는 점에도 한계가 있는 말이다.

 

그리고 왜 장애가 있으면 원치 않아도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장애우’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사용이 억제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인 약자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시대마다 크게 달라져 왔다. 그리고 그 말들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 주는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지적 장애인’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들을 ‘백치’, ‘정신 박약아’, ‘정신 지체자’ 등 차별적인 말로 부른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가혹한 말들이다. 지금은 그나마 언어 속에서라도 배려와 공감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도가 된다. 물론 그것도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글: 김일환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