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100년 전 우리말 풍경 - 개항 직후, 어떤 물건들이 수입되었을까?

튼씩이 2021. 2. 7. 08:52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변화는 보통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100년 전 한국어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전례 없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언어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특히 어휘는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이다. 개항 이후 서구의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일상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한국어의 어휘 체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개항 직후의 수입품 목록은 1883년에 작성된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 관세 규정과 같은 해 조선과 영국 간에 체결된 통상조약의 관세 규정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관세 규정은 수입품에 대한 것과 수출품에 대한 것으로 나뉘는데, ‘수입품’이나 ‘수출품’이라는 용어 대신 항구로 들어오는 상품과 나가는 상품이라는 뜻으로 ‘진구화(進口貨)’, ‘출구화(出口貨)’라는 중국식 한자어를 사용했다.

 

 

<그림 1> 1883년 조선국해관세칙(朝鮮國海關稅則):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 관세 규정

 

 

관세 규정에 나타난 수입품의 목록은 물품의 종류와 관세율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먼저 그 종류를 살펴보면 약재 및 향료, 염색 재료, 금속류, 유지(油脂), 직물, 문방구 및 종이, 음식물 및 연초, 잡화 등이 있었고, 관세율은 5%~30%였다. 농기구, 수술용 도구, 책, 지도, 신문, 측량 기구, 활자 등 면세품도 일부 있었는데 여행자의 짐 가방도 면세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되던 물품과 영국에서 수입되던 물품 중에는 공통적인 것도 있었는데, 일부는 같은 단어로 기록되어 있고 일부는 다른 단어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기를 ‘촬영기(撮影器)’로, 벽시계를 ‘시진종(時辰鐘)’으로 쓰는 등 오늘날의 명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1883년 일본과 영국에서 수입된 공통 물품

 

 

 

수입품 목록의 ‘자래화(自來火)’는 유럽의 성냥을 부르던 중국식 한자어로, 문자 그대로의 뜻은 ‘스스로 오는 불’이다. 부싯돌로 힘들게 불을 피우고 정성을 다해 불씨를 지키던 사람들이 살짝 긋기만 해도 순식간에 불이 붙는 신식 성냥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을 편리함과 신기함을 엿볼 수 있는 명칭이다. 신식 성냥은 이후 ‘딱성냥’, ‘당(唐)성냥’, ‘양화(洋火)’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비누는 일본과의 조약문에는 ‘석감(石鹼)’으로 쓰였고 영국과의 조약문에는 ‘이조(胰皂)’로 쓰였다. ‘석감’은 일본식 한자어로, 원래는 잿물을 밀가루로 굳힌 재래식 비누를 뜻했다. 그러다 유지(油脂)에 수산화나트륨을 첨가한 서양식 비누가 들어오며 의미가 변화해 신식 비누를 나타내게 되었다. 영국과의 조약문에 쓰인 ‘이조’는 중국식 한자어로, 무환자나무의 열매를 갈아 만든 재래식 비누를 뜻했는데, ‘석감’과 마찬가지로 후대로 오며 서양식 비누를 뜻하게 되었다. ‘이조’라는 표현은 이후 한국 문헌에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석감’은 ‘비누’와 함께 널리 쓰였다.

 

 

<그림 2> 1925년 7월 14일 『조선일보』에 실린 ‘구라부석감’ 광고.
한자로 ‘石鹼(석감)’이라고 쓰고 ‘비누’를 병기했다.

 

 

치약은 일본과의 조약문에는 ‘마아분(磨牙粉)’으로, 영국과의 조약문에는 ‘마치분(磨齒粉)’으로 쓰였는데, 둘 다 ‘이를 갈아내는 가루’라는 뜻이다. 당시 수입되던 치약은 물에 개어 쓰는 가루 형태로 되어 있었다. 이후 한자의 배열 순서가 바뀌어 ‘치마분(齒磨粉)’으로 널리 쓰였다.

 

 

<그림 3> 1930년 10월 8일 『조선일보』에 실린 ‘라이온치마분’ 광고

 

 

수입품 목록의 ‘편복산(蝙蝠傘)’과 ‘주산(綢傘)’은 모두 금속으로 된 살에 비단을 씌운 우산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편복산’의 ‘편복(蝙蝠)’은 박쥐의 한자어로, 접혀 있던 금속 살이 펴지는 모양이 박쥐가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편복산’과 더불어 ‘박쥐우산’으로도 쓰였다.


서양의 주류도 수입되었는데, 맥주나 포도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종에는 25%~30%의 높은 관세율이 적용됐다. 동아시아에서 원래 ‘맥주(麥酒)’는 보리로 담근 술을 뜻했는데 19세기 말부터는 유럽식 맥주를 지칭하게 되었다. 일본과의 조약문에서는 ‘맥주’로 썼지만 영국과의 조약문에서는 ‘beer’의 중국식 발음을 따라 ‘피아(皮兒)’라고 썼다. 영국에서 수입되던 맥주 중에는 흑맥주도 있었는데 이는 흑맥주를 뜻하는 ‘porter’의 중국식 음역어인 ‘박덕(博德)’으로 썼다. 브랜디를 ‘박란덕(撲蘭德)’으로, 위스키를 ‘유사길(惟斯吉)’로 쓴 것도 중국식 발음을 따른 것이다. 이처럼 개항 초기 박래품(舶來品)*의 명칭에는 중국식 한자어가 많이 쓰였다.

 

* 박래품: 주로 다른 나라에서 배에 싣고 들어온 물품을 이르는 말

 

 

 

<그림 4> 1901년 6월 19일 『황성신문』에 실린 ‘구옥상전(亀屋商廛)’ 광고

 

 

다양한 박래품은 조선인의 일상을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성냥으로 불을 켜고, 향긋한 비누로 얼굴을 씻고, 칫솔에 치약을 짜 이를 닦고, 비 오는 날 도롱이와 갈모 대신 우산을 쓰고, 시계를 차고 외출을 하고, 사치품에 속하던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어느새 낯설지 않은 근대의 풍경이 되었다.


1899년 4월 3일 『황성신문』 논설은 ‘자래화’로 손쉽게 불을 붙이는 요즘 사람들이 힘들게 불을 피우던 옛사람들을 비웃지만 나무와 돌, 그리고 쇠의 원리와 성질을 궁구해 불을 피우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성냥에서 문명의 이기를 느끼는 시대는 이제 한참 지나갔고 일상의 풍경도 너무나 달라졌지만, ‘격물(格物)’의 지혜가 사라져 감을 우려하던 19세기 말의 논설은 인류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생각하는 힘을 잃어 간다는 21세기의 비판적 목소리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글: 안예리(한국학중앙연구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