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만취한 선비가 흐느적거리면서 갈 ‘지(之)’ 자로 걷고 친구들이 부축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 화가 김후신(金厚臣)이 그린 <대쾌도(大快圖)>로 자본담채, 크기 33.7 x 28.2 cm, 간송미술관 소장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때는 살벌한 금주령이 내려진 영조임금 때였습니다. 술을 빚거나 마시는 것을 엄하게 다스리던 시절이었지만 금주령 앞에 희생당하는 건 양반이 아닌 일반 백성이었지요.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 하는 백성은 술을 빚어 팔았다고 잡혀가고, 몰래 술 마셨다고 잡혀가지만, 금주령이 내려진 대낮에도 양반들은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고 대로를 활보했다고 합니다.
▲ 김후신(金厚臣) <대쾌도(大快圖)>, 자본담채, 크기 33.7 x 28.2 cm, 간송미술관 소장
그런데 이름을 날렸던 조선의 많은 유명 화가들도 술에 취해야만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의 대표적 주당 화가들을 보면 우선 심한 술버릇과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음을 물론 마침내는 눈밭에서 술에 취해 얼어 죽은 최북이 있지요. 또 술에 취해야 그림을 그렸던 장승업, 술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섭섭해할 정도였으며, 호를 ‘취화사(醉畵史)’로 붙였던 김홍도, 역시 호를 취옹(醉翁)이라 붙였던 김명국도 그 대열에서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의식과 무의식 가운데 어느 한쪽에서도 예술에 대한 영감을 놓지 않았던 화원이었을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든 <대쾌도>는 술 취한 그림이지만 고주망태가 된 양반들을 그림 속 배경인 나무들은 흘겨보고 있습니다. 이는 술 취한 사회를 비웃는 뜻이 담겨 있는 김후신의 번득이는 재치가 엿보이지요. 술 취한 그림에는 중선 중기 문인화가 이경윤의 <수하취면도(樹下醉眠圖)>도 있는데 나무 아래 술 몇 병을 비운 채 술에 취해 잠들어 있습니다.
▲ 이경윤 <수하취면도(樹下醉眠圖)>, 31,2×24.9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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