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100년 전 우리말 풍경 - 신소설에 그려진 근대의 신문 독자들

튼씩이 2021. 5. 11. 13:21

20세기 초에 나온 신소설에는 당대인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신문을 읽는 모습도 그중 하나이다. 신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신문은 인물의 정체를 암시하기도 했고, 사건을 유발하거나 반전을 가져오는 극적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다. 신문을 읽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최첨단 매체였던 신문이 개인의 일상을 파고든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883년 『한성순보』의 창간을 필두로 1886년 『한성주보』, 1896년 『독립신문』, 1898년 『매일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1904년 『대한매일신보』, 1906년 『만세보』 등 다양한 신문이 간행되었다.

 

 

▲ <그림 1> 1898. 5. 7. 『독립신문』(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이 시기 신문은 대개 4면으로 발행되었는데, 1면에는 정치 문제나 사회 문제를 다룬 논설이 실리고, 2면에서 3면에 걸쳐 보도 기사가 실리고, 4면에 광고가 실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보도 기사는 정부의 소식을 담은 ‘관보’, 외국의 소식을 전하는 ‘외보’ 또는 ‘외국통신’, 국내의 사건 사고를 다룬 ‘잡보’, 전쟁 소식을 담은 ‘전보’ 등으로 분류되었다. 그중 신소설의 이야기에서 특히 자주 언급된 것은 잡보였는데, 다른 기사들에 비해 생활 밀착형 소식들을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림 2> 1899. 5. 3. 『제국신문』잡보(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오른쪽부터 ○인천항 일본 상인들의 횡포, ○충청남도에 큰비가 내린 정황, ○미아 찾는 소식, ○전당표 습득

 

 

그럼 이제 신소설에서 인물들이 신문을 읽는 장면들을 살펴보자. 구연학의 신소설 『설중매』 첫 장면은 병든 모친을 간호하던 주인공 장매선이 모친이 잠든 틈을 타 신문을 읽는 장면이다. 신학문을 공부한 매선은 이후 각종 역경을 이겨 내며 개화 운동에 앞장섰는데, 신문은 신여성으로서의 장매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품이다.

 

 

 

 

박이양의 신소설 『명월정』에서 허원이 채홍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도 신문이 등장한다. 결혼은 했으나 자식이 없는 허원은 살림 잘하는 과부를 후실로 들여 후사를 얻기 위해 개성에 간다. 한편, 부모를 잃고 불우한 사정으로 개성의 기생조합으로 팔려 간 채홍은 기생조합의 모략에 빠져 과부인 척하고 허원을 만나러 간다. 허원 역시 자신의 처지를 속이고 홀아비 행세를 하며 어색한 대화를 이어간다.

 

 

 

 

신분을 속인 두 남녀의 첫 만남에서 허원은 채홍 옆에 신문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과부들이 이렇게 유식한가’ 하고 의아해한다. 사실 채홍은 기생조합에 팔려 가기 전 사립 정덕여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신학문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던 신여성으로, 채홍이 읽던 신문은 그녀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장치이자 앞으로 신분이 탄로 날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한편, 박춘식과 박정애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최찬식의 신소설 『안의성』에서 춘식이 읽은 짧은 기사 한 편은 뜻하지 않은 비극을 초래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생선 장사를 하며 힘들게 돈을 모은 춘식은 애지중지하는 동생 정애를 여학교에 보냈고, 정애는 등하굣길 광화문 언저리에서 마주치던 법학도 상현과 결혼을 한다. 양반집 자제와 결혼한 동생이 자기 때문에 밉보일까 우려한 춘식은 결혼 당시 오빠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속이도록 한다. 결혼한 동생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만나러 갈 수 없어 애를 태우던 춘식은 어느 날 신문에서 파고다공원을 밤낮으로 개방한다는 기사를 보고 비밀스러운 접선을 계획한다.

 

 

 

 

▲ <그림 3> 『매일신보』 1913. 8. 28.(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실제로 당시 신문에는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일반 시민에게 파고다공원을 개방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비밀스럽게 전해 받은 이름 없는 편지에서 오빠의 필체를 확인한 정애는 시어머니 몰래 저녁 8시에 파고다공원에 간다. 남매는 눈물겨운 상봉을 했지만, 미행한 시누이에게 들켜 외도를 한 것으로 오해를 받은 정애는 시댁에서 쫓겨나고 이후 갖은 고초를 겪게 된다. 신문에 실린 기사 한 편이 몰고 온 비극인 셈이다.


이인직의 신소설 『은세계』의 최옥순과 최옥남 남매 역시 신문 기사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다. 강릉 출신의 옥순과 옥남은 부친을 여읜 뒤 미국 워싱턴으로 유학을 가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다 낙심하고 철도에 뛰어들어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만다. 이틀 뒤 워싱턴의 한 신문 잡보에 이들에 관한 기사가 실린다.

 

 

 

 

이 기사를 본 한 미국인이 남매를 불쌍히 여겨 이들의 학비를 전액 부담해 주기로 하고, 이후 옥순과 옥남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참아가며 학업에 전념한다. 음악학교에 진학한 옥순과 경제학과 사회철학을 공부하던 옥남은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기사를 보게 된다. 1907년 고종의 퇴위와 순종의 즉위를 알리는 기사였다.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외국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남매는 “우리도 하루바삐 우리나라에 돌아가서 우리 배운 대로 나라에 유익한 사업을 하여 봅시다.” 하고 그길로 짐을 싸고 귀국길에 오른다. 이 남매의 미국 유학은 신문 기사로 시작되어 신문 기사로 끝이 난 셈이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누』에서 김옥련은 일곱 살이던 청일전쟁 당시 피난길에 부모를 잃었지만 어른이 되어 미국 땅에서 신문 광고를 통해 아버지와 재회한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간 옥련이는 우등생으로 졸업을 했는데 그 소식이 신문 잡보에 실렸고, 이를 본 옥련의 아버지 김관일이 자기 딸임을 짐작하고 신문에 현상금을 건 광고를 낸다.

 

 

 

 

소설 속 장면처럼 실제로 당시 신문에는 사람을 찾는 광고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광고가 적지 않게 실렸다. 술심부름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딸을 찾는 아버지의 광고<그림 4>, 전차에서 분실한 약을 찾는 광고<그림 5>, 잃어버린 나귀를 찾기 위해 나귀의 생김새를 설명한 광고<그림 6> 등을 보면 광고를 낸 사람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 한편, 누군가 잃어버린 회중시계를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광고<그림 7>처럼 분실물을 보관하고 있다는 광고도 종종 실렸다. 이러한 광고들은 근대의 신문이 신문사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일방적 통로였을 뿐 아니라 독자들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쌍방적 통로의 성격도 가졌음을 보여준다.

 

 

▲ <그림 4> 『대한매일신보』 1907. 8. 29.

▲ <그림 5> 『대한매일신보』 1907. 11. 20.

▲ <그림 6> 『독립신문』 1896. 9. 26.

▲ <그림 7> 『대한매일신보』 1908. 2. 7.

 

 

신소설 작가들은 당대의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들에 극적인 성격을 더해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신문 논설을 보며 분노하고 결의를 다지는 옥순과 옥남 남매의 모습, 잡보에 실린 짤막한 기사들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춘식과 김관일의 모습, 광고를 보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옥련의 모습은 소설 밖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이다.

 

 

글: 안예리(한국학중앙연구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