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DDP살림터 간송유물관에는 국보 제270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이 있습니다. 이 연적은 높이 9.8㎝, 몸통 지름 6.0㎝의 크기인데 어미원숭이가 앉아서 새끼원숭이를 안아주려고 하는데 새끼원숭이가 두 손으로 밀어내는 해학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입니다. 연적 모양을 보면 어미원숭이의 머리에는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에는 물을 따라내는 구멍이 뚫려 있지요. 그리고 어미원숭이의 눈ㆍ코ㆍ입과 새끼원숭이의 눈에는 짙은 철사(鐵砂) 물감으로 점을 찍었습니다.
▲ 국보 제270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간송유물관 소장
그런가 하면 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耐火土)로 눈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으며, 바탕흙은 맑고 푸른 잿물로 전면에 곱게 발라 은은한 광택이 나타납니다. 12세기 중반 무렵 순청자(純靑磁)의 전성기에는 오리ㆍ복숭아ㆍ거북ㆍ동자 등의 소형 연적이 적지 않게 제작되었는데, 이 모자원숭이모양 연적도 그러한 연적 중의 하나지요. 청자 소품 도자기 가운데는 국보 제74호 청자압형수적(靑瓷鴨形水滴)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 명품입니다.
그런데 이 연적에는 숨은 일화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 도쿄의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가 20여 년 동안 그가 수집해온 원숭이 모자 연적 등 명품 청자 22점을 55만 원에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이를 사려고 두서너 달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흥정이 벌였는데 개스비는 간송의 문화재 사랑과 애국심에 감동하여, 소품 두 점을 뺀 나머지 20점을 40만 원에 넘겨주었습니다. 40만 원이면 당시 서울의 번듯한 기와집 400채를 살 수 있는 큰돈으로 요즈음 화폐 가치로 치면 1,000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지요. 이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는 간송 선생의 집념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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