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지하철 안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등 뒤에서 누군가가 ‘비켜 달라’고 말한다. 문에 좀 더 가까이 있는 내가 내리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 줘야 하는 상황인데, 뭔가 언짢은 기분이 든다. ‘내가 문을 막고 선 것도 아닌데, 나도 어쩔 수 없이 여기 서 있는데…’라는 억울함이 불쑥 들거나 ‘아니, 내릴 사람이 준비를 미리미리 하지 왜 나더러 비키라는 거야?’와 같은 반감도 생긴다.
이처럼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자기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요구를 들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이다. 자신이 비난을 듣는 처지에 놓였다는 생각에 체면을 구겼다고 여기기도 한다. 체면이란 스스로 보호하고 주장하고 싶은 자기만의 이미지다. 그러므로 체면에는 누군가가 나의 얼굴을 세워주는 것뿐만 아니라, 남이 나를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도 포함된다. ‘비켜 달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짧은 순간, 자기 행동권을 침해당한 마음이 들어 불편했던 것이다.
만약 같은 상황에서, 내 등 뒤에 있던 사람이 “내립니다.”나 “저 좀 내릴게요.”라고 한다면 어떨까? 상황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걸음을 옮겨 길을 내준다. 결과적으로 같은 행위를 한 것이라지만, 이것은 자신이 동의하고 스스로 결정한 행동이라 누구에게도 불평할 수 없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업무 수행 중에 손님들에게 길 양보를 요청할 때 “지나갈게요.”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비켜주세요’와 ‘내립니다’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상황과 결과는 같더라도, 누가 할 일인지는 명확하게 다르다. ‘비켜주세요’에서 비킬 사람은 ‘너’이다. 이처럼 눈앞의 상대가 할 행동에 대해 말하는 것을 ‘너-전달법(You-message)’이라고 한다. 한 예로, 명절에 어른 앞에서 세배를 올리면서 “절 받으세요.”라고 하면 어불성설이다. ‘가세요, 보세요, 하세요’ 등에서 행동할 주체는 ‘너’인데, 이런 표현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시키거나 요구하는 말이므로 어른에게 명령하는 셈이다.
이와 달리, ‘내립니다’는 ‘내가 할 일’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것을 ‘나-전달법’(I-message)’이라고 한다. ‘나-전달법’이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행동의 주체를 자신으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할 일에 대해서만 전하고, 상대방은 그 말을 근거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한다. 어른께 세배할 때 차리는 인사말을 다시 보면, 자신이 할 행위를 중심으로 “절 올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한편, ‘너-전달법’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을 나서는 학생에게 보호자가 쉽게 하는 말, “일찍 들어와”를 당사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선 늦게 다니는 것을 비난받는 기분이 들고, 그다음으로 자기 행동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당하는 듯 여길 수 있다. 이것은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나-전달법’은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함으로써 상대를 비난할 여지를 해결한다.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네가) 늦으면 엄마가 걱정해.”로 바꾸면, 자신을 향하는 상대방의 반감을 한결 덜 수 있다. 비록 외출하는 아이가 일찍 돌아와야 하는 것은 같을지라도, 아이는 엄마의 마음에 동의하면서 돌아올 시간을 스스로 정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를 해치지 않게 된다.
말은 ‘전하는 것[傳言]’이 전부가 아니다. 간혹 생각한 바를 잘 전했고 당시 상황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도, 나중에 찬바람이 부는 관계가 되는 속상한 경우들이 있다. 그 이유는 말하는 사람이 관계 유지에 소홀한 데 있다. 광고에는 ‘아직 ○○○를 모르시나요?’, ‘○○○를 안 써 보셨어요?’처럼 의문형 표현이 많다. 상품을 파는 광고야말로 타인에게 행위를 요구해야 하는데, 이처럼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정해진 답이 있더라도 우선 듣는 이가 동의하게 하고, 스스로 답을 하는 과정을 열어주기 위함이다. 자기 행위 결정권으로 체면을 세워주고, 구매 행위를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게 하는 이 소통법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업 비밀이 아닌가?
만약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가족이 있는데, 그 소리가 심히 신경 쓰인다면 이제 어떻게 요청할 것인가? ‘소리 좀 줄여’나 ‘소리 좀 줄여 줄래?’도 비교적 공손한 표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너-전달법’에 의존한 말이다. 우선 ‘소리를 줄여 주면’처럼 자신이 요청하는 것을 말하고, 그다음으로 ‘(내가) 좀 잘 수 있겠어’ 정도로 나의 상태를 전하면 된다. ‘나-전달법’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말에 참여하는 두 대상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란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글: 이미향(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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