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유행의 괴질(怪疾)이 천리의 바다 밖에까지 넘어가 마을에서 마을로 전염되어 마치 불이 들판을 태우듯이 한 바람에 3읍(三邑)의 사망자가 거의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아! 이게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 예로부터 너희들의 고장은 남극성이 비쳐 사람들이 질병이 적다고 하는데, 이번 재앙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진실로 내가 덕이 없어 상서로운 기운을 이끌어 먼 곳까지 널리 감싸주지 못한 소치이므로, 두렵고 놀라워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이는 《순조실록》 25권, 순조 22년(1822년) 10월 19일 기록으로 멀리 제주도에 돌림병이 돌아 세 읍에서 죽은 사람이 수천 명이라는 소식을 듣고 임금이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연결되어 뭍의 돌림병이 순식간에 제주도에도 퍼지지만 그때는 쉽게 오가지 못하는 먼 섬이라 뭍의 돌림병에도 걱정이 없었는데도 한번 돌림병이 번지니 불이 들판을 태우듯 했다니 참으로 걷잡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 조선시대엔 돌림병이 돌 때 종이 심지를 말아서 콧구멍에 넣어 재채기하면 좋다는 민간요법도 있었다.(이무성 작가)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시대에는 돌림병이 번지면 벼슬아치들을 보내 여러 산천(山川)에 양재제(禳災祭, 재앙을 물리치려고 귀신에게 비는 제사)를 지내고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도 모두 여제(厲祭, 돌림병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와 위제(慰祭, 재해가 일어났을 때 지내는 제사)를 지낼 뿐이었습니다. 다만, 《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1432년) 4월 21일에는 “각도의 감사에게 돌림병 구제조항에 따라 구료하라고 전하다.”라거나 《고종실록》 39권, 고종 36년(1899년) 8월 16일에는 "민내부령(內部令) 제19호, 〈전염병 예방 규칙(傳染病豫防規則)〉을 시행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방역수칙을 만들어 돌림병을 물리치기 위한 노력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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