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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법수면에 가면 넓이 33,911㎡의 늪지대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늪지식물이 자라고 있지요. 이 늪지는 남강(南江)을 끼고 발달했으며, 물의 깊이는 1.5∼2m입니다. 늪지와 늪지식물들은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데, 법수면의 늪지대는 이곳에 광주 안 씨가 정착하면서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후손의 번창을 위해 늪지대를 보존하여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조사된 늪지식물로는 보풀, 자라풀, 줄풀, 세모고랭이, 창포, 개구리밥, 물옥잠, 골풀, 나도미꾸리낚시, 애기마름, 마름, 가시연꽃, 붕어마름, 털개구리미나리, 노랑어리연꽃, 통발, 뚜껑덩굴 등이 있으며 식물성 프랑크톤인 먼지말류와 돌말류도 발견되었다고 하지요. 이 18 가지의 고등식물은 겉핥기식 조사에서 나타난 것들로 좀 더 집중조사를 하게 되면 더 많은 종류가 기록될 것입니다.
이 늪지는 문화재청에서 1984년 천연기념물 제346호로 지정되어 보호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합니다. 이곳은 늪지식물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가 이 늪지를 보호해 온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지요. 가까이에는 나이가 500여 살이나 된다는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9호), 함안 용산리 함안층 새발자국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222호)도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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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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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당교주는 향악기과 당악기의 합주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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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궁중의 나례(儺禮)의식, 곧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에 쓰였던 처용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처용무는 궁중정재의 하나로 신라 때 처용설화와 관계가 깊다는 이야기, 처음엔 한 사람이 검은 천으로 만든 사모, 흑포사모(黑布紗帽)를 쓰고 추다가, 후에 청(靑), 홍(紅), 황(黃), 흑(黑), 백(白) 등 오방(五方)의 화려한 옷을 입은 5명의 춤꾼이 추는 춤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주로 연산군 이후에는 잔치의 끝맺음을 하는 파연(罷宴)의 악무(樂舞)로 채택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순조 때의 《진찬의괘》나 《진작의괘》의 그림에는 5방의 원무 외에 4명의 협무(協舞)도 들어 있다는 이야기, 1800년대 이후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는 점차 <처용무>의 등장이 줄어들고 대신 새로 창작된 <춘앵전>이나 <선유락>, <무고>, <검무> 등이 많아졌다는 이야기,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원기로도에 <포구락>과 <처용무>가 함께 들어 있다는 점은 곧 이 그림이 1600~1800년대의 잔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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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설화나 처용가(處容歌)에 대한 국문학적인 연구는 정병욱의 <문학으로 본 처용가>」를 비롯하여 여럿 논문이 발표되어 활발한 반면, 무용이나 음악적인 연구, 곧 처용무의 역사나 변천과정, 춤사위, 춤 속에 나오는 창사(唱詞)음악의 변천, 반주음악에 관한 연구 등은 국문학적인 연구에 비해 매우 미진한 상황이다.
처용무의 문화재적인 가치는 춤사위, 춤의 대형, 손동작이나 발동작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춤 발생의 기원설에서부터 출발하여 역사적 변천과정, 특징적 동작의 의미, 복색, 가면 제작, 장단과 선율을 포함한 음악 및 악기편성, 노래 가사와 창조(唱調) 등의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 성과가 축적되어야 가치 있는 문화재로서의 몫을 다 할 것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현행 처용무의 반주음악은 <수제천>으로 시작한다. 이 음악에 맞추어 처용의 탈을 쓴 춤꾼들이 무대 위로 한 사람씩 등장하게 되는데, 5명의 춤꾼들이 하나씩 나와 정면을 바라보고 자리를 잡게 되면 박 소리와 함께 <향당교주>가 시작된다. 처용무뿐만 아니라, 홀기를 비롯한 무보, 옛 문헌이나 춤 자료를 보면 궁중의 정재에는 춤동작이나 장단에 따라 구체적인 악곡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향당교주라는 이름은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향당교주란 무슨 말인가? 또한 악곡명으로 쓰일 때는 어떤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인가? 잠시 알아보도록 한다.
향당(鄕唐)이란 말에서 향(鄕)은 향악이고, 당(唐)은 당악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향당은 향악곡과 당악곡이며 향악기와 당악기를 아우르는 말이 되겠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 이후 중국과의 음악교류에서 일부 당의 문물이 들어온 흔적은 여기 저기 보이고 있고, 고려시대에는 송(宋)나라에서 음악에 관련된 악기나 악보 등이 많이 들어왔다.
고대의 음악인 아악도 들어와 공자묘에는 아직도 아악이 연주되고 있으며 사악(詞樂)을 비롯해 중국의 속악, 즉 당악이 대량 유입이 된 것이다. 이러한 당악은 고려에서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또한 교주(交奏)라는 말은 교대로 연주하는 형태, 또는 합주를 뜻하는 용어라 하겠다. 그런데 이 두 종류의 음악, 향악과 당악은 형식을 비롯하여 악기의 편성, 장단, 음 높이(Key) 등이 달랐기에 궁중음악에는 향악곡을 연주하는 악사의 집단과 당악곡을 연주하는 집단이 별도로 자리를 잡고 연주에 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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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악재동(鄕樂在東)이라 해서 향악을 연주 하는 악사들은 동쪽에 자리를 잡고 향악기로 연주하고, 당악재서(唐樂在西), 당악은 서쪽에 자리를 잡고 당악기가 중심이 되어 연주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성종 임금 이후, 즉 15세기 후엽으로 내려오면 향악을 연주할 경우에도, 당악기가 함께 연주하게 되었고, 또한 당악을 연주할 경우에도 향악기가 함께 한 것이다.
다시 말해 향악과 당악이 따로따로 연주하는 상태에서 교주(交奏) 곧 교대로 연주하거나 합주하는 상태로 변화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합주할 때에는 각 악기들의 기본음의 높이가 서로 같아야 하는데, 향악기와 당악기는 기본 음정이 서로 다른 악기이기 때문에 음 높이를 조절하지 않으면 원만한 합주가 이루어지기 힘든 법이다.
피리의 경우, 향악곡에는 향피리로 연주하면 되고, 당악곡일 경우에는 악기를 바꾸어 당피리로 연주하면 된다. 그러나 대금과 같은 중요 선율악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대금은 신라의 삼죽(三竹)으로 대표적인 향악기임으로 향악곡을 연주할 때에는 안성맞춤이지만, 당악곡에 편성될 때에는 당대금이 따로 없기 때문에 별도의 운지법을 익히지 않으면 연주가 불가한 것이다.
실례를 들어 황종(黃鐘)을 소리낼 경우, 향악곡에서는 제3공까지 막지만, 당악곡조에서는 제5공까지 막고 소리내야 한다. 제5공은 향악곡의 남()자리이기 때문에 향악은 당악에 견주어 약 단3도 정도가 높은 음역인 이다. 대금이란 악기의 음공(音孔) 배열이 정확하게 반음구조로 짜여져 있지 않기에 합주는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없으나, 고도의 숙련된 연주자들은 이를 무난하게 연주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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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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