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밥이 되어
- 허홍구
오늘 왔다가 오늘 가는
하루살이의 생명도
위대하게 왔으리
길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나무 이파리도
신비롭게 왔다가 가느니
내 작은 한 톨의 쌀로 몸 받아 올 때
하늘과 땅이 있어야 했고
밤낮이 있어야 했고
해와 달 비바람이 있어야 했다
농부의 얼굴을 뙤약볕에 그을리게 했고
애간장을 녹이게 했고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일하게 하고
땀 흘리게 했다
이제 사람의 밥이 되어 나를 바치오니
작은 이 몸이 어떻게 온 것인지를 일깨워
부디 함부로 하지 말게 하소서
▲ 허홍구 시 <사람의 밥이 되어>, 시화 이무성 작가
24절기 ‘춘분(春分)’이 얼마 전이었다. 춘분은 겨우내 밥을 두 끼만 먹던 것을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때다. 지금이야 대부분 사람이 끼니 걱정을 덜고 살지만, 먹거리가 모자라던 예전엔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식사가 고작이었다. 그 흔적으로 남은 것이 “점심(點心)”인데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 먹는 간단한 간식을 말하는 것이다. 곧 허기가 져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이 그야말로 가볍게 먹는 것을 말한다.
우리 겨레가 점심을 먹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 하지만, 왕실이나 부자들을 빼면 백성은 하루 두 끼가 고작이었다. 보통은 음력 9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는 아침저녁 두 끼만 먹고, 2월부터 8월까지는 점심까지 세끼를 먹었다. 겨울엔 낮 길이가 짧은 탓도 있지만, 일하지 않는 농한기 겨울엔 세 끼를 먹는 것이 부끄러워 점심은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허홍구 시인은 그의 시 <사람의 밥이 되어>에서 쌀 한 톨이 되기 위해서 농부는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일하게 하고 땀 흘리게 했다“라고 쌀 한 톨의 의미를 짚는다. 그러면서 “이제 사람의 밥이 되어 나를 바치오니 / 작은 이 몸이 어떻게 온 것인지를 일깨워 / 부디 함부로 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목숨을 살리는 밥, 그 밥은 농부의 허리가 휘어 태어난 것이기에 부디 함부로 하지 말라고 간절한 읍소를 한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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